[영끌족 4년의 그늘] [下]
김지섭 기자
입력 2024.01.06. 03:00 업데이트 2024.01.06. 07:11
직장인 이모(37)씨는 2019년 6억원을 주고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샀다. 은행에서 2억3000만원, 저축은행에서 1억원을 빌렸다. 그런데 2022년부터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씨는 매달 230만~240만원 정도를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대출 갚는 기간이 30년으로 길고, 저축은행 대출은 원금을 뺀 이자만 갚는데도 그렇다. 아이 1명을 키우는 이씨는 생활비가 빠듯해 5000만원의 신용대출을 추가로 받았다. 이씨는 “월급이 400만원대지만, 빚 갚는 돈 빼면 200만원도 안 남는다”며 “틈 나는 대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과 주식 호황기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를 했던 2030들이 뼈아픈 ‘빚 청구서’를 받아 들고 있다.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확신에 무리해서 ‘빚투(빚내서 투자)’를 했다가 고(高)금리와 경기 둔화라는 ‘강펀치’를 얻어맞은 것이다.
◇고금리에도 급증한 2030 ‘빚투’
2030의 빚은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2020년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5일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빚이 있는 2030 가구의 금융부채는 지난해 평균 1억3964만원으로 2019년(9276만원)과 비교해 4년간 50.5%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 연령대 증가율(19.6%)의 2.6배에 달한다. 40대(15.5%), 50대(12.1%) 등과 비교해 2030의 빚은 훨씬 빠르게 늘었다.
2030은 주로 아파트와 주식 등에 투자하기 위해 무리해서 빚을 냈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국내 5대 은행과 6대 증권사로부터 2030이 새롭게 빌린 돈은 80조2027억원으로 2022년 하반기(53조6066억원)보다 26조5961억원(50%) 늘었다. 전체 증가분의 62%가 주택담보대출(16조6102억원)이었다. 증권사에서 현금이나 주식을 빌려 매매하는 신용융자(7조1096억원)도 전체 증가분의 27%를 차지했다.
빚이 늘고, 금리가 급등하면서 2030이 매년 갚아야 하는 돈은 계속 불어나고 있다. 2019년 원금과 이자를 합쳐 1749만원을 갚던 2030 가구는 2022년에는 20.2%(353만원) 늘어난 2102만원을 갚았다. 가구당 한달 평균 175만원을 빚 갚는 데 쓴 것이다. 같은 기간 전 연령대 원리금 상환액 증가율(11.4%)의 2배에 가깝다.
빚에 짓눌린 2030의 현실은 ‘영끌족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노원구와 중랑구, 강서구, 관악구 아파트 투자 실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본지가 해당 지역 아파트 단지 4곳에서 1개 동(棟)씩 총 420가구의 등기부등본을 전수 조사한 결과, 최근 4년간 매매가 이뤄진 70가구 중 48가구(68.6%)의 소유자가 2030이었다. 이 중 36가구(75%)가 집을 사려고 대출을 받았는데, 이들의 평균 대출액은 2억3336만원이었다. 대출 금리를 연 5%로 가정해 계산한 가구당 평균 이자는 월 129만원에 달한다.
◇'연체의 늪’ 2030...자산가치 하락에 벼랑 끝
고금리에 경기 둔화까지 겹치면서 2030은 결국 연체의 늪에 빠지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19개 국내 은행의 20대 신용대출 연체율은 1.4%로 전체(0.6%)의 2.3배가 넘는다. 30대 연체율(0.6%)은 20대보다는 낮지만 1년 전(0.3%)의 2배가 됐다. 2030 비중이 높은 인터넷은행 연체율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2분기(4~6월) 인터넷은행 3사(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의 20대와 30대 신용대출 연체율은 각각 2.41%, 1.11%나 된다.
무리해서 투자한 2030의 집, 주식 등의 가격이 잘 오르지 않는 것도 문제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30 가구 중 빚이 있는 가구의 자산 가치는 지난해 3억8454만원으로 2019년(3억3989만원)보다 13.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 연령대 증가율(22.4%)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낮고, 50대(23.1%)나 60대(31.6%)보다 훨씬 낮다.
지난해에는 2030 자산이 부동산 및 주식 하락 등의 영향으로 전년(4억2290만원)보다 오히려 9.1% 줄었다.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 가치가 15.3%(2억9136만→2억4687만원) 하락한 영향이 컸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2030은 소득 기반이 부족해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에 취약한 집단”이라며 “생계형으로 2금융권, 카드론 등을 쓴 사람에게는 정책 지원을 하고, 부채 만기를 연장해 주는 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4/01/06/UUTPGWYAPJEWHIKSEKBWW566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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