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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예멘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4.01.12. 20:33 업데이트 2024.01.13. 02:23

일러스트=이철원


아라비아반도 남쪽 끝에 있는 예멘은 과거 ‘풍요로운 아라비아’로 불리며 번영했다. 구약성경 열왕기에는 예멘이 시바 왕국으로 불리던 시절, 시바의 여왕이 값비싼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은보석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방문해 솔로몬왕과 만난 일화가 나온다. 현대 사가들은 잘살던 두 나라 왕이 통상 교섭을 한 증거로 본다. 로마제국 시절엔 향신료 무역으로도 풍요를 누렸다.

▶세계적인 커피 산지로도 명성이 높다. 모카 커피는 15~17세기 예멘 항구도시 모카를 통해 커피가 유럽 전역에 수출되며 붙은 이름이다. 이 중 모카 마타리는 오늘날 세계 유명 커피의 하나다. 남쪽의 항구도시 아덴은 1960년대 초만 해도 미국 뉴욕에 이어 세계에서 물동량이 둘째로 많은 항구였다.

▶그토록 풍요롭던 나라가 지금은 ‘비참한 아라비아’로 불린다. 오늘날 예멘은 콩고나 북한보다 가난하다. 중동에서 예멘보다 못사는 나라는 아프가니스탄밖에 없다. 국민 40%가 절대 빈곤에 빠져 있고 희망 없는 국민은 어린이들까지 환각성 마약인 ‘카트’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낸다. 2015년 발발해 10년째 지속되는 내전으로 국민 수만 명이 죽었고 더 많은 국민이 난민으로 세계를 떠돈다. 그중 일부가 몇 해 전 제주도에도 흘러들어왔다.

▶예멘은 3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된 산유국이다. 대부분 사막인 이웃 나라들과 달리 비가 풍족해 농사도 가능하다. 남북으로 분단 됐던 나라가 1990년 통일에 성공했을 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그러나 내전으로 다시 쪼개졌다. 예멘이 지금처럼 된 데는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의 극단적 반목, 통일 전 소련에 의지해 연명하다 소련 해체 후 경제가 파탄 난 남부 공산주의 잔존 세력, 2011년 아랍의 봄으로 퇴진한 독재자 살레와 집권 세력의 부패가 삼각 파도처럼 이 나라를 덮쳤기 때문이다.

▶이 내전에서 반군 지도자 후티가 사망했다. 그 부하들인 후티 반군은 결국 수도 사나를 장악하고 사실상 예멘을 통치하고 있다. 이들의 모토는 국가 재건과 민생이 아니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발발하자 이를 실천한다고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30%가 오가는 홍해에서 외국 선박을 공격하고 있다. 후티 반군과 한편인 이란도 유조선을 나포하며 가세했다.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결국 미국과 영국 주도로 예멘 곳곳에 공습이 시작됐다. 예멘 국민의 고통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시바 여왕의 나라가 지옥이 됐다.

시바의 여왕
솔로몬왕
모카 마타리
독재자 살레
반군 지도자 후티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4/01/12/AFUCMMHHIZE3VNQ6OIENXFOZ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