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4] 사랑

문태준 시인
입력 2024.01.22. 03:00

일러스트=이철원


사랑

더러운 내 발을 당신은
꽃잎 받듯 받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흙자국을 남기지만
당신 가슴에는 꽃이 피어납니다

나는 당신을 눈물과 번뇌로 지나가고
당신은 나를 사랑으로 건넙니다

당신을 만난 후 나는 어려지는데
나를 만난 당신은 자꾸 늙어만 갑니다

 

-이성선(1941~2001)

책상에 올려놓고 수시로 들춰 읽는 시집들이 있다. 개중에는 이성선 시인의 시집도 있다. 어젯밤에는 ‘별똥’이라는 제목의 시를 읽었다. “별과 별 사이/ 하늘과 땅 사이/ 노오란 장다리꽃 밭 위로/ 밤에 큰 별똥 지나간다./ 소풍 가는 시골 초등학교 아이처럼”이라고 짧게 쓴 시를 읽고 난 후 밤의 마당을 서성거렸다.

이성선 시인은 산(山)을 소재로 해서 많은 시를 남겼고 정신의 고요와 영혼의 깨끗함을 읊었던 시인이었다. 이 시에서는 사랑에 대한 사유가 부드럽고 연한 음성에 실려 가만가만 들려온다. ‘나’의 언행에 대해 ‘당신’은 좋으니 궂으니 따지지 않고 너그럽게 감싼다. 불쾌해하는 낯빛이 조금도 없다. 인색함도 없어서 대공(大空)처럼 받아들인다. 쇠잔해진 ‘당신’을 오늘에 마주하고 있는 ‘나’의 뉘우침은 때늦은 것이기만 하다.

흐리고 탁한 내 마음을 맑게 하고, 술렁이는 내 불안을 잠재우고, 내게 무량한 빛을 주는 그런 ‘당신’을 생각한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01/22/OSALV2F4MZHXLJOOV2RN4LGJZ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