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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 "문제적 오케스트라? 음악도 정치도 서로의 音에 귀 기울일 때 명품" 김윤덕 기자 입력 2024.09.09. 00:03 업데이트 2024.09.09. 06:06 [김윤덕이 만난 사람] 평창' 이어 '고잉 홈 프로젝트' 성공시킨 피아니스트 손열음 창단 2년 맞아 베토벤 전곡 도전 해외서 활동 韓 연주자들 의기투합 지휘자 없이, 서서 연주해 화제 정치로 치면 '의원내각제' 독주보다 센 '앙상블의 힘' 보여줘 휴식은 '동굴'에 들어가 멍때리기 불같은 연주자? 死後 평가받고 싶다 ▲ '고잉 홈 프로젝트' 창단 2주년 맞아 베토벤 전곡 연주에 도전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열음'은 국어 교사였던 엄마가 지어준 순우리말 이름이지만, 팬들은 '열개의 음' '열 손가락' '손을 열다'로 풀이하며 열광한다. /김지호 기자 뒤늦게 ‘고잉 홈 오케스트라’에 감복했다. 베토벤 교향곡 ‘운명’을 지휘자 없이, 서서, 춤추듯 연주하는 통에 졸 틈이 없었다. ‘음악가의, 음악가에 의한, 음악가를 위한!’이 자유분방한 이 악단의 모토. 평창대관령음악제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젊은 거장’의 리더십을 입증한 손열음이, 14국 교향악단 50곳에서 활동하는 한국 연주자들과 의기투합해 펼친 도발이다. 이 명민한 피아니스트는 “우리 음악은 정치로 치면 대통령제가 아니라 의원내각제”라고 했다. “1등만 알아주는 사회, 솔로이스트만 우대하는 음악계에 앙상블의 힘을 보여주려 한다”고 했다. 퍼붓는 장대비를 뚫고 손열음이 나타났다. ◇ 의원내각제 같은 오케스트라? -이 빗속을 걸어온 건가? “걷고, 대중교통 이용하기를 좋아한다.” -전용 차량이나 매니저는 없나? “혼자 다닌다. 누가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게 불편하다.” -베토벤 전곡을 연주하는 ‘고잉 홈 프로젝트’ 창단 2주년 공연이 호평받고 있다. “오는 12월 8일 교향곡 9번 ‘합창’으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단원들도 지난 2년 여정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만족해한다.” -왜 베토벤이었나? “베토벤의 음악은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음악이자 사상이다. 그만큼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레오노레 서곡, 슈테판왕 서곡 등 서곡만 따로 모아서 연주하는 레퍼토리도 독특했다. “흔히 연주하지 않는 곡들도 들려드리고 싶어서. 서곡이 길지 않고 색깔도 다 달라서 청중이 좋아하시는 것 같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서서 연주하는 모습이 가장 새로웠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2022년 창단 연주회 때 지휘자가 티켓 오픈 직전에 못 온다고 통보해 와 모든 계획이 변경됐을 뿐이다.” -지휘자 없이도 오케스트라가 굴러간다는 일종의 실험, 도발로도 읽히던데. “그렇지 않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아버지 같은 존재다. 그런데 어쩌다 아빠 없는 아이가 나왔고,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 됐다.” -누군가 ‘교통경찰 없는 사거리에서 자율주행을 하는 듯 아찔한 기분’이라고 했더라. “아버지가 없다고 가정이 무너지지 않고, 대통령이 없다고 정부가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로 치면 의원내각제?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가 총리처럼 악장 겸 지휘자 역할을 하고, 수석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낸다. 지휘자 없이도 연주가 가능한 건 모두가 서로의 음(音)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클래식 애호가들은 못마땅할 것도 같다. “전 세계 훌륭한 교향악단이 많은데 그들과 똑같이 한다면 우리의 존재 의의가 없을 것이다.” -단원들 의상도 제각각이더라. “베토벤 시절에 단원 전체가 까만색 옷을 입고 연주하진 않았을 것 같아서(웃음). ‘블랙 앤드 화이트’ 안에서 자유롭게 입기로 했고, 어쩌면 이게 더 고전에 가까울 거라고 믿었다.” ▲ ▲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과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외국인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고잉 홈 프로젝트’. 지난 7월 14일 예술의전당에서 단원 대부분이 일어서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했다. /고잉 홈 프로젝트 ◇ 무모하고도 용감한 -프로젝트명이 왜 ‘고잉 홈(going home)’인가? “해외 연주를 다니면서 세계 각국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한국 연주자를 많이 만났다. 이들이 한데 모여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상상했다. 이방인으로서의 외롭고 고된 삶을 잠시 접고 집으로 돌아와(going home) 안식하는 마음으로.”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하며 떠올린 아이디어라던데. “2018년 예술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악장·수석·단원들을 불러 모아 오케스트라를 꾸렸다. 이 악단 별칭이 ‘고잉 홈’이었고, 음악적으로 너무 잘 맞아서 제대로 해보자 합심한 거다. 플루티스트 조성현,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호르니스트 김홍박, 첼리스트 김두민 등 4명이 주도했고, 한국을 제2 고향 삼아 활동하는 외국 연주자들도 합류하면서 외연이 넓어졌다.” -창단 연주회 첫 곡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작이었던 이 곡이 우리의 탄생과도 잘 어울렸다. 무모하고 용감하다는 점에서(웃음).” -여름, 겨울휴가 때 일시적으로 뭉치는 거라 연습할 시간이 부족할 텐데. “일반 오케스트라의 2배 이상 연습한다. 내가 말려야 할 정도다(웃음). 소속 악단은 직장이지만, 이곳은 동아리 활동 하듯 자발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다들 즐거워한다. 오늘 아침에도 누가 문자를 보냈더라. 음악 하는 게 이렇게 즐거운 줄 몰랐다고.” -무보수는 아닐테고. “특정 조직에 속한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많이 드릴 순 없지만, 서유럽 악단 기준에는 맞추려고 노력한다. 티켓 수입이 대부분이고 뜻있는 분과 기업이 후원해 주신다.” ▲ <YONHAP PHOTO-1700>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 공연서 연주하는 손열음 (평창=연합뉴스) 제19회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손열음이 연주하고 있다. 2022.7.3 [평창대관령음악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22-07-03 14:37:57/ <저작권자 ⓒ 1980-202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 모든 사람이 각자 중요한 사회 -평창대관령음악제부터 고잉 홈 프로젝트까지, 추진력이 놀랍다. “살면서 뭔가를 앞장서서 해본 적이 없다. 그냥 다 우연의 연속이었다(웃음).” -’평창’은 당시 서른두 살이었던 손열음의 리더십 시험대이기도 했다. “코로나로 많은 걸 포기해야 해서 절망감이 컸다. 나는 관객 참여형, 체험형 음악제를 꿈꿨는데 하나도 시도해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게으르고 불성실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근성도 있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오기도 있더라. 예산과 행정도 문제없이 해냈고(웃음).” -고잉 홈 프로젝트를 통해 앙상블의 힘을 절감했다고. “어릴 때부터 내가 이상적으로 그린 사회는 모든 사람이 각자 중요한 사회였다. 한 사람이라도 덜 중요하면 바로 티가 나는 오케스트라처럼! 나의 이상향을 만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 사회는 그 반대다. 독주(獨奏)하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 “배려, 존중, 설득 없이 하모니를 만들 수 없다. 모든 걸 양보해야 한다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음악도 정치도 출발해야 한다.” -’고잉 홈’에 참여하고 싶은 연주자가 많을 것 같다. “국내에 다양한 악단이 존재한다면 한국 연주자들이 해외를 떠돌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고잉 홈은 그들의 희망과 위안이다. ‘고잉 홈 아카데미’를 통해 젊은 연주자들이 프로들에게 배우며 성장할 기회도 주고 있다.” ▲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슈만을 연주하는 손열음. 격정적인 연주를 보여주는 무대에서와 달리 손열음은 겸손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조선일보DB ◇ 37년 워킹맘 엄마가 자랑스럽다 -손열음을 ‘불같은’ 연주자라고 한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엔 관심이 없다. 죽어서 어떤 연주자로 평가받느냐가 내겐 더 중요하다.” -연주를 안 할 땐 뭘 하나? “‘동굴’로 들어간다. 한국에 오면 원주 집으로 가서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웃음).” -유년기엔 책 읽기, 피아노 치기 두 가지만 했다더라. “초등학생 땐 역사책을 좋아했고 중학 시절엔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같은 독일 작가를 좋아했다. 카뮈, 사르트르도 좋아했지만, 지금도 열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의 김유정, 채만식 같은 우리 근대 작가들은 여전히 좋다.” -열여섯 살에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해외 투어를 거의 혼자 다닌다던데. “2005년 쇼팽 콩쿠르 결선 진출자 중 한 사람으로 호명됐을 때 나만 환호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웃음). 맥도널드에서 혼자 자축 햄버거를 먹고 난 이후로는 혼자란 것을 딱히 슬프게 느낀 적은 없다. 해외 나가면 전화기 붙들고 잔다는 연주자도 있다던데, 나는 아니다(웃음).” -국어 교사였던 엄마가 딸 레슨을 위해 원주와 서울을 왕복 3시간씩 오갔다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 날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셨다. 그럼에도 엄마가 37년을 워킹맘으로 산 것, 자기 일을 놓지 않고 정년퇴임 하신 게 멋지고 자랑스럽다.” -후배인 조성진, 임윤찬은 어떻게 평가하나. “평가할 게 없다. 너무들 잘하고 있어서. 내가 배우는 것도 많다.” -’모차르트는 손열음이 제일 잘 친다’에 동의하는지? “어느 지휘자가 ‘모차르트는 누가 쳐도 정답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은 수없이 다양한 표정과 놀라움, 변덕을 갖고 있다. 어느땐 유아적이면서 현자 같고, 극적이면서도 단순해서 연주자 스스로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어느 예능 프로에 출연해 ‘터키행진곡’을 신들린 듯 치던 손열음은 알더라. “아르카디 볼로도스라는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편곡한 ‘터키행진곡’을 연주한 것뿐이다(웃음).” -청중이 즉석에서 주문한 앙코르 곡 ‘라캄파넬라’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영상도 화제였다. “일곱 번째 앙코르라 준비한 곡이 바닥나서 물어본 건데, 파가니니의 ‘라캄파넬라’를 요청하더라. 마지막으로 친 게 3년 전이라 걱정했는데, 내 몸의 근육이 너무 잘 기억하고 있었다.” -징크스가 있는지. “아예 만들지 않는다. 부자유에 갇히기 싫어서. 밥을 든든히 먹고 연주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투어를 하다 보면 굶어야 하는 상황이 더 많아서 그 습관도 없애 버렸다.” -무대 공포증은? “사람 만나는 게 훨씬 떨린다(웃음). 그런데 나이가 들어 그런가 아주 가끔 심하게 떨릴 때가 있다. 수명이 1년은 줄었겠다 싶을 만큼. 어느땐 ‘손을 내려놓고 무대에 올라갈까?’ 하는 생각도 한다.” -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나? “쫄지 말자, 내가 오늘 연주를 망쳐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지난 5월엔 대원음악상 대상을 받았다.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첫 회부터 후원해 온 대원문화재단에서 주는 상이라 뜻깊었다. 김일곤 이사장님은 교향곡 2주제도 다 외워 부를 만큼 참관객이다.” -자이언티와 장기하를 좋아한다고. “그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좋다. 자이언티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유니크하고, 장기하는 그 자체로 장르다.” -녹록지 않은 시대를 건너고 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지난 몇 달간 베토벤 교향곡을 정주행하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특히 6번 교향곡 ‘전원’은 내가 대단히 좋아한 적이 없는 곡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감동을 받았다. 특히 폭풍우가 지나간 뒤 안도하는 마음이 담긴 마지막 대목. ‘모든 것이 그대로여서’ 참 감사하다는 지극히 소박한 감정이 내게도 큰 위안을 줬다.” ☞손열음 1986년 강원 원주 출생. 다섯 살에 피아노를 배워 2002년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공부했고, 2018년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지냈다. 로린 마젤, 드미트리 키타옌코, 히사이시 조, 정명훈 등 세계적인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비롯해 슈만, 쇼팽 등 여러 앨범을 냈다. 2022년 고잉 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평창대관령음악제에 이어 고잉 홈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열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웃었다. /김지호 기자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2024/09/09/52ADLI2B7BHGBC63ASOQGBQD4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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