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봉산 금대암 2014-05-04

 

^^

2014-05-04(일)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봉산에 있는 금대암를 다녀왔습니다..

  카메라: Leica X2

^^

금대암(金臺庵)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656년(신라 태종무열왕 3) 행우(行宇)가 창건하였으며,
도선(道詵: 827∼898)이 나한전을 지어 중창한 뒤 나한도량으로 이름이 났다.
1430년(조선 세종 12)에 천태종 판사도대선사(判事都大禪師) 행호(行乎)가
인근 안국사(安國寺)와 함께 중창하여 금대사(金臺寺)라고 하였다.
1489년 김일손이 이곳을 여행하고 남긴 기행문 《유두두록》에 따르면
당시 이 절에는 20여 명의 승려가 수도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왜구 500여 명이 몰려와
이곳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고 하며,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950년 6.25전쟁 뒤 폐사된 것을 금대암복구기성회가 중건했다.
현재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선원 등이 있고,
유물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동종과 신중탱화 등이 남아 있다.
삼층석탑은 행우가 사찰을 창건할 당시 세운 것이라고 하나,
탑의 조성 수법을 보면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금대암 동종과 신중탱화는 1998년 9월 28일에 각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8호와 제269호로 지정되었다.
이 중 동종은 1734년(영조 10) 쌍계사에서 제작된 것으로 음통이 약간 훼손되긴 하였으나 상부의 용두가 정교하다.
전형적인 조선 중기 동종으로 높이 59cm, 지름 43cm, 둘레 138cm이다.
신중탱화는 가로 100cm, 세로 105cm로 1785년(정조 9)에 제작된 것이다.
서우와 예우 등이 제작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탱화의 명문에 나온다.
한편 금대암 입구에는 높이 40m에 이르는 젓나무가 두 그루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령이 많은 젓나무로 추정되며 행호가 중창할 때 심은 것으로 보인다.
1998년 11월 13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출처:네이버사전)

삼봉산 금대암 위치 지도

금대암 주차장에 서있는 삼봉산 등산 안내도

이곳 금대암에서 삼봉산~오도재 까지의 10km 정도를 다음에 산행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에서 첫차로 출발하면 등산 후 당일 귀경이 가능할 듯 합니다..  

 ▽

금대암에서 바라본 지리산 조망.. 안내도를 보고 베꼈습니다..

안내도.. 하봉 높이 설명(1,174m)가 틀린 듯 합니다.. 1,781m입니다.. 

 ▽

함양 금대암 전나무

 

^^

함양 금대암 전나무
1998년 11월 13일 경상남도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지리산을 앞에 두고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위치한 금대암 입구에 있는 두 그루의 젓나무(전나무)이다.
추정 수령(樹齡)은 약 500년이며, 그중 큰 나무는 높이 40m, 가슴높이둘레 2.92m로서
현존하는 젓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김일손(金馹孫)이 쓴 기행문인 《유두류록(遊頭流錄)》에
‘산사(山寺)를 찾으니 20여 명의 스님이 정진도량하고 있었다.’ 하였고,
유효인이 쓴 시 중에 ‘잘 있느냐 금대절아, 송하문(松下門)이 예 같구나.
송풍(松風)에 맑은 꿈 깨어 잠꼬대를 하는구나’ 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1403년 당시의 조사(租師) 행호(行乎)가 중창한 금대암에는 노송이 많았으며,
이 젓나무도 당시의 것이라고 추정된다.
(출처:네이버사전)

^^

  ▽ 금대암 요사

 ▽

금대암 윗편 바위에 서있는 친구들.. 이곳에서의 지리산 조망이 끝내줍니다..

 ▽ 금대암 위편 암자

 ▽ 지리산을 배경으로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새로 세운듯 합니다.. 

 

 

삼봉산 금대암 위치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