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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원의 사진산책] 寫眞을 공짜로 달라는 사회

[조인원의 사진산책] 寫眞을 공짜로 달라는 사회
입력 : 2015.03.12 05:49

원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3/11/2015031104144.html


목숨 걸고 찍은 生態 작품도 신문에 게재된 議員 얼굴도
주말 바친 블로거 게시물도 거저 요구하고 퍼가는 세태
創作의 가치 엄연히 있는데 代價 치를 생각은 왜 안 할까


생태 사진을 찍는 사진가 A씨는 자신이 당한 황당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몇 년 전 지방 어느 군청에서
박물관 유치를 위한 세미나를 열면서 자기 사진들을 전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흔쾌히 사진 20점을 빌려주었다.


행사를 모두 마친 후 군청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군(郡)에 그 새 사진들이 없어서 그러는데
다섯 점만 기증하시죠"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좋은 뜻으로 빌려준 것도 모자라서 사진을 공짜로 달라니.
그 직원은 사진은 물론이고 값비싼 액자나 프린트 가격은 얼마였는지 묻지도 않았다. A씨는 너무 화가
나서 "당신들은 자선 음악회가 끝나면 연주자한테 악기까지 두고 가라고 하느냐?"며 단칼에 거절했다.
당시 전시에 대여한 사진들은 모두 40호(788×1090㎜) 전지 크기로 개인전을 했을 때 한 점당 최소
120만원에 팔렸던 사진이었다. 그걸 그냥 공짜로 달라고 한 것이다.


자연에서 살아 있는 동물을 찍는 생태 사진 촬영은 몇 날 몇 달을 한 곳에 머물며 숨어서 기다려야 하
는 외롭고도 어려운 작업이다. 세계 최고의 자연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
graphic)' 에 나오는 생태 사진들은 사진가들이 목숨을 걸고 찍는다. A씨도 세 차례나 이 잡지 한국판
에 자신의 새 사진을 게재했던 사진가다. 들과 산을 찾아가 숨어서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꼼짝없이
머물며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가 끝나자 공짜로 달라고 하는 것이 정상일까?


사진을 거저 달라는 요구는 신문사 사진기자들도 자주 겪는다. 몇 년 전 국회에서 일상적으로 열린
아침 회의에서 한 국회의원의 말하는 모습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다음날 사진 속 의원의 보좌관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사진 잘 봤습니다. 그런데 사진 한 장 얻을 수 있을까요?" 사진을 살 수 있는
지 묻는 것도 아니고 맡겨놓은 자기 것인 양 달라는 식이었다. 말만 잘하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게
사진이라고 여긴 것이다. 따져 묻고 싶었지만 '무지(無知)의 소치'라 여기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신문이나 통신사 기자들이 일하면서 찍은 사진들은 법적으로 본인 것이 아니며 그래서 함부로 줄수
없다고. 하지만 몇만원이면 원본 이미지로 살 수 있다고. 그러자 그는 짜증 섞인 음색으로 "알았다"고
하곤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기가 찼다.


사진 파워 블로거 B씨는 SNS를 하다가 우연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다시 잘
보니 자기 사진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긁어와서 글을 올린 사람은 마치 자기가 찍은 것처럼 쓰고 있었
다. 전화를 걸어 "누가 찍었는지 표시를 하든지 아니면 사진을 빼라"고 했더니 사과는커녕 "뭐 이런 걸
로 전화를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B씨는 일주일 내내 회사 업무로 받은 스트레스를 주말마다
카메라를 들고 전국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사진집을 만들며 풀어 왔고 누구보다 사진을 사랑했다. 그
는 "사진 저작권을 따지자니 귀찮고, 함부로 퍼다 쓰는 사진 때문에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의욕도
떨어진다"며 "다른 사진 블로거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사진을 찍기 위해 공들인 시간과 노력은 사라지고 함부로 남의 사진을 퍼다 쓰는 일은 인터넷에서 흔
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슬프게도 결코 별난 경우가 아니다. 사진이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이런
불법 게재의 사례들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타인의 노고(勞苦)가 담긴 사진을 우리는 왜 이렇게 가볍게
여길까? 언제부터 사진을 공짜로 달라고 하거나 남의 사진을 내 것처럼 갖다 써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까? 서울포토 페어를 7년 넘게 운영해 오고 있는 강철 디렉터는 "값비싼 DSLR 카메라가 1000만대 넘
게 팔릴 만큼 사진 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작가들의 사진을 직접 사고파는 사진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
과는 별개"라며 "카메라가 좋아지고 촬영이 쉬워진 만큼 '저 정도면 나도 찍겠다'면서 사진의 가치를
더 낮춰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외국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다. 사진가는 화가나 다른 작가들처럼 대우받고 사진은 당연히 어떤
값을 치르고 사는 작품이다. 한 미술평론가는 이를 두고 우리 사회가 사진가를 외국처럼 예술가(Artist)
라기보다 기술자(Technician)로 생각하는 경향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어떤
사진가에 대해 물을 때 "그 사람 사진 잘 찍나"를 묻지 "무슨 사진을 찍는가"를 물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가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기계를 쓰는 사람, 도구를 들고 일하는 사람을 책을 보는 선비보
다 낮춰 보았던 수백년 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다른 사람의 창작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
법적 보호를 따지기에 앞서 상식적으로도 남의 사진을 공짜로 얻겠다는 심리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사진을 공유하고 공개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창작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남의 사진도 날로
먹을 생각을 접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사진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출처: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