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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카톡을 하지 않는 이유

카톡을 하지 않는 이유

조선일보 김성현 문화부 차장
입력: 2015.08.28 23:09
출처: 이곳을 클릭..

 

"야, 카톡방에서 만나자." 고교 선배의 이 말을 듣고 또다시 난감해지고 말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카카오톡을 해본 적이 없다. 라인이나 밴드는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가입한 적이 없다.

블로그는 하지만 '하루 1회 업데이트' '주말 휴무' 라는 원칙을 지킨다. 이러다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시대에 '컴맹' '넷맹'을 넘어 '왕따'가 되는 건 아닌지 실은 걱정도 든다.


SNS에 도전해본 경험이 있긴 하다. 카톡에 대한 '사이버 검열'이 한창 논란이었을 때 외국

회사에서 서비스하는 SNS에 업무상 잠시 가입했다. 취재원과 온라인 대화는 무사히 마쳤는데

문제는 그때 시작됐다. 다른 지인이 해당 서비스에 가입하거나 메시지를 보낼 적마다

휴대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삑삑거리는 소리를 뱉어냈다.
대개는 '알람음 무음(無音)'을 선택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간편하면서도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 SNS를 지워버렸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물론 'SNS 전성시대'에 불편함이 없는 건 아니다. 당장 부서 회식 날짜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해서

후배들을 끊임없이 성가시게 한다. 간단한 공지 사항도 후배들이 일러주기 전까지는 알 방법이 없다.

첨단 장비로 무장한 현대인들 사이에 낀 원시인 같다는 자괴감도 든다.


그런데도 'SNS 쇄국정책'을 고집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24시간 접속'이라는 SNS의

운영 원칙 자체가 성가심과 피곤함을 부추긴다. 휴대전화든, SNS 서비스든 내가 당당한 주인이 아니라

상전을 모시고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분명 그 관계는 역전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사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인간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독립된 존재가 되어 지배하는 상황을 마르크스는 '소외(疏外)'라고 불렀다.


그리운 친구들과 만나서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정겨운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클릭 몇 번과 하트 몇 개로

감정 교류를 대신하는 것도 못마땅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카페에 앉은 젊은 남녀가 고개를 숙인 채

휴대전화 액정 화면만 들여다보는 모습을 볼 때면 의아함을 넘어서 아찔함마저 느낀다.

폭염·홍수 같은 천재지변이나 면접을 본 회사의 합격 통지가 아니라면 바로 맞은편

사람을 두고 몰두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세상에 얼마나 되는가.


흔히 SNS상의 인간관계가 평등한 것처럼 선전하지만 현실 사회의 권력관계는 온라인에서도 반복되거나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유명 기업인이나 연예인이 굳이 나를 팔로(follow)할 이유가 없듯이 말이다.

별다른 내용 없는 가식적 댓글이나 '맞팔 신청'처럼 온라인상의 격식도 사실은 피곤한 적이 많다.


굳이 호숫가의 숲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던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까지

운운할 필요는 없다. 실은 생활 속의 간단한 원칙 몇 개만으로도 'SNS 중독'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저러나 고교 선배한테는 또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핸드폰을 바꾸었습니다..

삼성 애니콜 SPH-W8400 중고 동일 모델로 2013-10-07

http://blog.daum.net/ryoojin2/993

^^

현재 4개 째.. 저는 카톡을 하고싶어도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