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우의 쉬운 사진](14)뒷모습 멋지게 찍는 법
뒷모습에서 진짜 표정 찾다
"얘 뒷모습 좀 봐봐. '그냥 다 엄마 아빠 맘대로 하세요'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생후 40일 된 아이를 목욕시키면서 아내가 건넨 말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푸하하"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울다가도 물에만 들어가면 신나서 조용해지는 녀석이다.
등을 씻기려고 잠시 세웠더니 아기는 고개를 아래로 살짝 떨구고 몸을 맡긴 채 가만히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녀석이 내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날 쳐다볼 때도 미처 실감하지 못했던 사실을 녀석의 뒷모습에서 찾은 셈이다.
△렌즈 50㎜·셔터스피드 1/60 sec·조리개 f/5.6·감도 ISO 400
사람들은 그래서 뒷모습을 두고 '거짓이 없는, 사람의 진짜 표정'이라고 하나 보다.
프랑스 문호 미셸 투르니에(Tournier)는 사진가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가 찍은
사람의 뒷모습 사진에 글을 붙여 '뒷모습'이란 책을 낸 바 있다.
책에서 투르니에는 "뒷모습이야말로 꾸밀 수 없는 진실의 표정"이라고 웅변한다.
축 처진 부모님의 어깨, 조심조심 발을 떼는 소녀, 서로를 바라보는 남녀.
이들의 뒷모습을 통해 우리는 굳이 몸을 돌려세워 표정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 감정과 마음, 때론 성격까지도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때론 뒷모습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통 인물을 찍을 땐 앞모습과 옆모습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뒷모습만 잘 포착해도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재작년 10월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한 사찰에서 찍은 이 사진도 사실 뜻밖의 수확이었다.
애초에 여행을 떠나면서 내가 찍고자 했던 건 '길'이나 '숲'이었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카메라를 메고 사찰로 들어섰을 때 이 두 스님이 내 앞을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개 한 마리를 앞세우고 뒷짐을 진 채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얼굴을 마주 보지도 않고 조용히,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자석처럼 끌렸다.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30분쯤은 그렇게 두 스님의 뒤를 따라 걸었던 것 같다.
내 인기척을 못 느꼈는지 스님들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보폭은 고요하면서도 느긋하게 일정했고 두 사람이 걷는 걸음의 속도는 일부러 맞춘 듯 똑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이 두 사람은 족히 10년은 이렇게 매일 걸었겠구나.
이 뒷모습은 한두 번의 산책에서 나오는 건 아니겠구나….'
카메라 셔터를 그때부터 누르기 시작했다.
스님들의 발걸음과 팔 동작, 고개를 드는 각도를 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앞모습에선 '표정'이 중요하지만 뒷모습은 '움직임'을 찍는 것이니까.
나중에 사진을 꺼내보니 이날 찍은 모든 사진 중에서도 이 사진이 가장 내 맘을 끄는 걸 느꼈다.
'움직임'을 통해 '진짜 표정'을 건진 것이다.
원문: http://travel.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17/2011081701330.html
내겐 너무 쉬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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