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우의 쉬운사진](22) 사진 찍을 땐'총잡이'처럼
상상 밖의 사진 찍고 싶다면, 카메라는 언제나 '장전'!
△렌즈(35mm)·셔터스피드(1/1000 sec)·조리개(f/5.6)·감도(ISO 400)
흔히들 우연히 얻은 결과를 두고 '소 뒷걸음치다 쥐 잡았다'라고 한다.
성과를 얕잡아 볼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사진 찍을 땐 '소 뒷걸음치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도 없다.
특히 여행지에선 '소 뒷걸음' 없인 어떤 재미있는 사진도 건질 수 없다.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사진 찍을 때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가 '목적지에서 잘 찍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지리산에선 천왕봉 정상에서 사진 찍을 생각만 하고,
중국에 가면 자금성 또는 만리장성 앞에서 찍을 사진에만 집착한다.
준비도 많이 한다.
관련 웹사이트를 뒤지고, 블로거들이 올린 사진을 미리 살핀다.
혹시나 배터리가 닳아 떨어질까봐 카메라는 평소엔 꺼 놓는다.
목적지에 닿으면 비로소 그때 카메라를 꺼내 든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이건 가장 재미없게 사진 찍는 방법 중 하나다.
예측을 벗어나는 흥미진진한 사진을 찍고 싶다면,
여행지에선 일단 찍는 사람부터 '총잡이'처럼 행동해야 한다.
황야의 총잡이들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바로 총을 꺼내 들 수 있도록 준비한다.
여행사진도 비슷하다.
'사진 찍는다'는 뜻의 영어 단어 '슛(shoot)'엔 '총을 쏘다'는 뜻도 있지 않나.
카메라는 일단 항상 켜두자.
가방에 넣지 말고 어깨나 목에 건다.
방전될까 걱정돼서 꽁꽁 싸두고 꺼놓으면 정작 중요한 순간을 놓친다.
뛰어가는 강아지, 꽃 위에 앉은 벌, 재빨리 지나가는 현지인.
대개 여행사진은 이런 요소들 덕분에 더 빛난다.
이때 카메라를 꺼놓고 있으면 이런 순간이 지나가는 것을 그저 보고 있다가 뒤늦게 '앗'하고 후회하게 된다.
카메라를 미리 세팅해 놓는 것도 좋다.
급하게 찍으면 사진이 흔들리거나 초점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전체가 모두 흔들린 사진보단 차라리 초점이 약간 빗나간 사진이 기록으로 남기기엔 낫다.
셔터 스피드를 높게 설정해두면 재빨리 사진을 찍어도 어느 정도 잘 나온다.
내 경험을 돌아보면 그동안 맘에 드는 사진의 대부분은 사실 '뒷걸음치다' 얻었다.
올해 여름 전북 김제시 하소백련지 청운사에서 찍은 이 연꽃 사진도 그렇게 건졌다.
이날 새벽부터 일어나서 수백 장을 찍었지만,
연꽃 바로 옆에 벌 한 마리가 다가온 순간 빠르게 셔터를 눌러 딱 한 장을 건진 게 지면에 크게 실렸다.
카메라를 꺼놨거나 잠시 방심했다면 놓쳤을 장면이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 벌 진짜 찍은 거야? 합성 아냐?"라고 물었다.
난 짐짓 너스레를 떨며 이렇게 대답했다.
"준비하면 다 보여. 장전 안 하면 못 찍지."
원문: http://travel.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14/2011121401693.html
내겐 너무 쉬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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