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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좌

[유창우의 쉬운사진](24) 낯선 곳 찾아 헤매지 말자

 

[유창우의 쉬운사진](24) 낯선 곳 찾아 헤매지 말자
출퇴근길에 보이는 것 찰칵… 그저 그런 일상이 낯설게 다가옵니다

 

△렌즈 28mm₩셔터스피드 1/125 sec₩조리개 f/5.6₩감도 ISO 400

 

카메라는 제법 비싼 물건이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하나 장만하려면 목돈이 든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카메라를 새로 장만하면 갑자기 마음이 비장해지는 모양이다.
"뭐부터 찍어야 제대로 찍었다는 말을 듣겠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태반.
"어떤 오지를 찾아가야만 멋진 첫 출사여행이 되겠느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
새로 산 DSRL 카메라를 가슴에 품고는
"사진가 배병우씨처럼 근사한 풍경 사진을 찍어 보이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도 봤다.


이들에게 내가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이란 꽤 싱거운 것이다.
"출퇴근길에 보이는 걸 찍어봐.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찍는 것도 좋고."
기대에 찬 표정이 허무하게 변할 때면 좀 미안해지지만, 나로선 이게 가장 좋은 조언이다.


왜 다들 먼 곳에서만 사진 재료를 찾을까.
멀리 가려면 일단 돈과 시간이 든다.
낯선 곳으로 갔으니 뭘 찍을지 몰라서 헤매기도 한다.
간 김에 뭔가를 건져오겠다는 부담감에 편하게 사진 찍을 즐거움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늘 다니는 곳, 가까이에 있는 물건, 늘 보는 얼굴부터 찍으면 마음이 일단 편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좀 더 친숙한 각도, 더 나은 장면을 찾아낼 수 있다.


가령 매일 지나치는 출근길에 카메라를 들고 나가보면 늘 똑같던 아침이 자못 특별해지는 걸 느낄 게다.
담벼락과 골목, 그냥 지나쳤던 동네 가게 간판, 집 앞에 놓인 자전거, 돌담에 누군가 그려놓은 귀여운 낙서까지.
늘 보던 것이라고 무심히 넘겼던 것이 새삼스레 세밀하게 보인다.
그저 그런 일상의 순간이 낯설게 다가온다.
카메라의 힘은 이런 것이다.
손에 쥐는 순간 갑자기 관찰력이 생기고 데면데면하게 지나쳤던 사물이나 사람도
사진적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는 것 말이다.
그 묘미를 알면 사진이 재밌어진다. 즐거워진다.
낯선 곳에서 허둥지둥할 때보다 더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


난 그래서 요즘도 종종 출퇴근길에 카메라 하나를 메고 어슬렁어슬렁 회사 주위를 돌아다닌다.
이 사진도 2008년 어느 날 다니던 길을 배회하다 찍었다.
입사 이후 18년 가까이 드나든 서울 광화문거리.
그 근처 피맛골 골목을 카메라를 들고 기웃거렸다.
'식사 균일 5000원' '고갈비구이 백반, 삼치구이 백반, 조기구이 백반' 같은 문구가
빽빽하게 박힌 간판이 경쟁하듯 늘어서 있는 거리.
매일 보던 이 풍경이 어쩐지 그날따라 재밌게 보였다.
그 사이를 터덜터덜 걸어가는 남자 뒷모습까지 보이자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2012년이 된 지금 이 사진을 꺼내보니 감회가 새롭다.
2008년 자취를 감추고 재개발의 뒤안길로 사라진 피맛골 골목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이젠 서울에선 더는 볼 수 없는 장면.
늘 보던 장면이라고 그냥 지나쳤다면 아마 피맛골이 사라진 뒤에야 아쉬워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찍은 사진이 이렇게 소중한 기록이 됐다.


원문: http://travel.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11/2012011101739.html

 

[유창우의 쉬운 사진] 요약(전체): 이곳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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