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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렘브란트처럼… 당신도 웃고 있나요?

김윤덕 문화부장

입력 2019.05.28 03:14


렘브란트의 '자화상' 앞에서 과 투병 중인 그를 떠올리다
세계 지성사 흔든 책 만들며 평생을 출판에 바쳐온 老匠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할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네"


'여보게, 짧은 작별인사 몇 마디 해도 되겠는가.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손에 쥐어도 봤고, 그 모든 걸 빼앗겨 보기도 했네. 한 움큼의 빵이 없어 원치 않은 일에 손대던 시절도 있었지…. 허상을 좇다 문득 서 보니 내 나이 예순. 모든 걸 빼앗기고 나서야 나는 진정으로 웃을 수 있었네. 내 살아 보니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오, 기뻐서 웃는 것도 아니었소. 어둠을 따라 걷다 보니 빛이 보이고, 빛을 따라 걷다 보니 다시 절벽. 그럼에도 나는 참 잘 놀다 갑니다. 자네도 잘 놀다 오시게.'


말리부 언덕, 바람 부는 게티미술관에서 '그'를 떠올린 건 렘브란트(1606~ 1669)의 '웃는 자화상' 앞에서다. 스물한두 살, 군복 차림의 청년이 앳되게 웃고 있는 작은 그림. 그는 유독 렘브란트를 좋아했었다. 자화상을 유독 많이 남긴 이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은 주름 하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삶의 풍랑이 절절히 박혀 있다고 했다. 그의 소식을 들은 건 LA로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암(癌)이라고 했다. 지난 연말 밥자리에서 봤을 때만 해도 뭉근한 입담과 촌철로 좌중을 웃게 하였는데, 암이라니. 그러고 보니 풍채가 많이 잦아든 듯했고, 눈두덩이 조금 부어 있던 것도 같았다. 정종이 두 순배쯤 돌았을 때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한 말이 떠올랐다. "구차하고 회한 가득한 인생이었지. 참으로 그러했지."




4·19세대인 그는 스물여덟에 출판사를 열어 평생을 책더미에서 살았다. 마키아벨리, 토머스 쿤, 에리히 프롬, 빌 브라이슨, 리처드 도킨스 등 세계 지성사를 뒤흔든 명저들을 세상에 내놨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녔지만 저자와 번역자들 사이엔 '악명'이 높았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물론 글의 오류, 논거의 모순과 부족을 그냥 넘어가는 법 없었다. 그렇게 나온 책도 개정판을 거듭했다. '왜 그리 재미없고 어려운 책만 내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는 결기 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쉬운 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자칫 우중(愚衆)을 생산하는 혹세무민이 되기 쉽지. 모르는 단어와 개념을 사전 통해 찾는 글 읽기야말로 지식의 창고를 채우는 작은 노고라오." 잘나가는 정치인, 선동가들 책도 만들어 한몫 벌지 그랬냐는 농담엔 고개를 내저었다. "똑똑한 그분들이 왜 내게 올까. 장사 잘하는 출판사로 가지. 설령 온다고 해도 사양하겠어요. 거짓말을 지성으로 포장할 순 없지요."


출판이 가난한 건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나 그는 "독재와 싸우던 그 시절엔 학자와 운동가, 편집자들이 어울려 소주에 김치 한 접시 놓고 밤새워 논쟁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다"고 회고했다. 조영래 변호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요즘 386 정치인들과는 달랐지요. 민주화 투쟁으로 수감되고 고문받았지만 누굴 증오하거나 조롱하며 독설을 퍼붓지 않았어요.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도 조의를 표한 사람이에요. 지식인들이 앞장서 반대했던 88올림픽도 그는 '우리 민족에게 온 큰 선물'이라고 했지요. 그 혜안이 얼마나 놀라운지. 이념과 진영의 논리에 갇히지 않은 참자유인이었다오." 종이값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돈 안 되는 책만 만드느라 문 닫을 뻔한 적도 여러 번. 깐깐한 성정에 척지고 돌아선 저자도 한둘이 아니란다. "그런다고 책이 잘 팔리거나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대강대강 사는 게 속 편한 것을." 쓸쓸한 표정으로 그가 술잔을 털어넣자 누군가 이렇게 위로했던 것 같다. "50만부, 100만부는 안 팔려도 이거 하난 분명하지. 이사 갈 때 끝까지 버리지 않는 책들이 형님이 만든 책이라는 거. 촌스럽고 고지식하지만 그래서 대체불가능 출판사라는 거."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독일 쾰른의 한 미술관에 렘브란트의 또 다른 자화상이 있다. 세상 떠나기 1년 전 그린 말년의 모습으로 아내와 아들의 죽음, 파산으로 이어진 불행을 '달관의 웃음'으로 승화한 걸작이다. 겨울비 내리던 골목에서 헤어질 때 그가 늙은 렘브란트처럼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품위를 잃어선 안 돼요." 노을에 젖은 미술관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그에게 엽서를 썼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반(反)지성의 시대에 당신의 노고로 세상은 한결 품위 있어졌다고. 스물여덟 빛나던 그때보다, 지금 당신 얼굴에 핀 주름과 미소가 훨씬 깊고 아름답다고.

♣도입부의 인용 글은 네이버 블로거 홍쌤이 렘브란트 말년의 '웃는 자화상'을 보고 쓴 감상시입니다.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7/20190527030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