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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판결 디테일] 외제차 리스료 대납받은 교수에…법원따라 ‘같은 듯 다른’ 판단

백윤미 기자

입력 2019.04.27 15:10


동물 심장병권위자, 뇌물수수로 실형에 파면까지
17명이 리스료 갹출…‘대가성없는 2명분은 무죄
대학 측, 징계부가금 산정 때 무죄 부분도 포함해
교수 "부당하다" 행정소송법원 "위법처분 아냐"



동물 심장병 분야 권위자로 알려진 지방국립대 A교수는 지난해 2월 파면됐다. 대법원에서는 징역형 실형 판결이 확정됐다. 대학원생들에게 외제차 리스료 4588만여원을 대납받고 논문심사비와 실험실습비 명목으로 4990만원을 받아 챙겼다는 혐의다. 그는 ‘세계 3대 인명사전’으로 불리는 마퀴스 후즈후 ‘세계의 인물’,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교육센터(IBC), 미국인명정보기관(ABI)에 모두 등재될 정도로 연구분야 권위자였기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특히 그가 학생들로부터 외제차 리스료를 대납받았다는 혐의는 형사재판과 최근 선고된 행정소송에서 모두 주요 쟁점이 됐다. 리스료에 대한 형사소송과 행정소송의 판단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A교수가 받은 리스료에는 어떤 이야기가 얽혀 있는 것일까.

◇"의례적 선물" 항변에도…17명 분담한 리스료, 15명이 낸 것은 유죄


A교수는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학생들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2017년 8월 구속기소됐다.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은 외제차 리스료다. 대학원생들로부터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39차례에 걸쳐 4500여만원의 리스료를 대납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한 것은 당시 대학원생 반장이던 B씨였다. B씨는 A교수가 타던 국산 승용차를 외제차로 바꾸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다른 대학원생들에게 "A교수가 타던 차가 오래돼 바꿀 예정인 것 같은데 차를 마련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이다. 모두 17명이 갹출해 리스료를 부담했다. A교수는 재판 과정에서 "자동차 리스료는 대학원생들로부터 의례적으로 받은 ‘선물’일 뿐 뇌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17명 가운데 15명이 낸 리스료에 대해서만 뇌물로 판단했다. 다른 2명은 리스료를 낼 당시 대학원생이 아니어서 A교수의 직무인 논문작성과 지도·심사 등에 대한 대가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A교수가 대학원생들에게 논문심사비와 실험실습비 명목으로 5890만원을 받아챙기고,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를 부풀린 뒤 돌려받는 방식으로 5500여만원을 챙긴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교수에게 징역 3년 6개월과 2억1900여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리스료의 경우 A교수가 먼저 대학원생에게 요구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대학원생들의 교수에 대한 선물의 의미도 함께 갖고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국립대 교수로서 도덕성과 청렴성을 갖춰야함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1억원이 넘는 뇌물을 수수하고, 연구인건비를 허위로 청구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했다.

A교수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벌금 3000만원으로 감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논문심사비와 실험실습비가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책정해 지급하는 액수가 현실적으로 상당히 부족했던 것이 범행의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명목으로 받은 금액의 상당 부분을 실제로 학위논문 작성을 위한 실험비용과 논문 심사 교수들에 대한 수고비 명목으로 지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외제차 리스료에 대해서는 "A교수가 먼저 요구하지 않았고, 제자들로부터 부적절한 선물을 받는 잘못된 관행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다가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리스료 지급에 관한 대가로 구체적인 편의를 제공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교수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지난해 9월 형을 확정했다.



◇"파면·징계부과금 취소하라"며 행정소송…법원 "문제 없다"


대학 측은 A교수가 2017년 12월 형사재판 1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은 것을 근거로, 파면 결정과 함께 뇌물수수액의 2배인 1억7480만원을 징계부가금으로 내라고 했다. 이에 A교수는 대학 총장을 상대로 파면과 징계부가금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A교수 측은 "구속 상태에서 징계절차와 처분이 이뤄져 징계 혐의에 대해 충분한 소명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며 "형사재판에서 리스료 가운데 일부는 무죄가 선고됐는데, 대학 측이 이를 포함해서 징계부가금을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징계부가금 산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사건을 심리한 춘천지법 행정1부(재판장 성지호)는 최근 A교수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파면은 물론 형사재판에서 무죄로 선고된 뇌물액수를 징계부과금 산정에 포함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뇌물로 인정되지도 않았는데 법원은 왜 징계부가금에 포함해도 된다고 봤을까.

두 판결의 차이는 ‘대가성’에 기인한다. 뇌물은 ‘대가성’이 있어야 성립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금품 등 기타 이익을 받은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무와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또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했다면 사교적 의례의 형식으로 금품을 주고 받았다고 하더라도 수수한 금품은 뇌물이 된다.  하지만 국가공무원법에는 "공무원은 직무와 관련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례·증여 또는 향응을 주거나 받을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대가성 유무와 상관 없이 금품을 수수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 또 공무원이 얻은 재산상 이익의 5배 내에서 징계부가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있다.

재판부는 "징계부가금은 관련 규정에서 정한 금액보다 크게 적은 금액으로 산정됐다"며 "이 사건 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을 정도로 지나치게 가혹해 위법한 처분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27/20190427010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