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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우리는 모두 부모 노릇이 서툴다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19.04.11 03:13


'면두'는 만두의 친구라는 아이, 그런 말이 어딨냐고 타박한 엄마
혹시 창의력을 무시한 건 아닌가

버스 맨 뒷좌석에 젊은 엄마와 딸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이는 대여섯 살쯤. 너무 예뻐 호주머니에라도 넣어 다니고 싶을 나이였다. 엄마가 "우리 끝말잇기 할까?" 하자 딸이 "좋아" 하고 답했다. 아이가 먼저 말했다. "보석!" 엄마가 말을 이었다. "석면!" 아이는 "석면이 뭐냐"고 물었고 엄마는 아이를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아이는 '면'으로 시작하는 말을 쉽게 생각해 내지 못했다. '면봉, 면도기, 면사포…' 하고 알려주고 싶어질 때쯤 아이가 말했다. "면두!" "면두? 면두가 뭐야?" 엄마가 묻자 딸이 답했다. "면두는 만두 친구야!"

나는 감탄했다. 만두가 안 되니까 그 친구를 생각해 내다니. 그때 엄마가 말했다. "면두라는 말은 없어. 너는 왜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하니?" "왜 안 돼? 석면도 되는데?" 엄마와 딸이 티격태격했다. 아이의 창의력은 간단히 말살됐다. 엄마는 냉정하게 자신의 1점 획득을 선언하고 새로운 끝말잇기를 시작했다. "본드!" 도대체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나도 모르게 엄마를 흘겨봤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 속으로 말했다. '드론, 드론! 네가 이겼어!'

엊그제 신문에서 아들·딸을 각각 프랑스 장관과 하원의원으로 키운 오영석 전 카이스트 교수 이야기를 읽었다. 오 교수의 서른일곱 살 아들은 지난달 프랑스 디지털경제장관에 임명됐다. 서른네 살 딸은 재작년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한국 교육은 목표 지향적이고 프랑스 교육은 과정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면두를 단순 오답 처리하지만 프랑스는 면두가 무엇인지 묻고 적어도 0점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식 교육을 섞어 아이들을 키웠다고 했다.

그는 자녀 교육 방법으로 대화, 독서, 여행을 꼽았다. 그것들을 통해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경험은 망루의 높이와 같다"고 그는 말했다. 경험이 많이 쌓여야 망루가 높아지고, 그만큼 멀리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너희 인성은 내 책임이지만 장래는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부모는 조언자이지 결정자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광고 기획자 박웅현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부모들은 아이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죠. 아이가 언제 태어나게 해주세요 했나요? 그런데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아이를 무슨 대단한 작품으로 만들려고 하죠."



고1짜리 딸이 귀를 뚫고 입술을 칠하는 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귀고리가 예쁘다, 입술에 뭘 칠한 거니 하고 순순히 말을 붙였다. 물론 10대 여자아이의 귀고리와 빨간 입술이 예쁘게 보일 리 없었다. 아이는 진짜 예쁘다는 줄 알고 귀고리가 얼마짜리라는 둥 친구가 선물로 준 걸 발랐다는 둥 맞장구를 쳤다. 사춘기 아이의 장신구와 화장품은 부모의 책임인가. 그것이 아이 인성에 영향을 미치는가. 아이는 끝말잇기에서 막혀 '만두 친구 면두'를 생각해 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걸 두고 '너는 왜 아무 생각이 없느냐'고 야단쳐야 옳은가. 혹시 내가 '석면'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를 먼저 주지는 않았는가. 좋은 교육이 뭔지 모르는 부모는 없다. 다만 처음 해보는 부모 노릇이 서툴고 불안할 따름이다.

버스 뒷자리 엄마와 딸은 끝말잇기를 그만두고 간판 읽기 게임을 시작했다. 엄마가 시작했다. "김 이비인후과." "호랑이 태권도." "음… 미래 부동산." "천재 수학." "음… 음…." 엄마가 먼저 막혔다. 아이와 간판 읽기를 해본 사람은 안다. 이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건 한글 독해력이 아니라 민첩성이다. 휙휙 지나가는 간판 중 무엇을 읽을 것인지 재빨리 결정해야 한다.

엄마가 말했다. "직진 후 좌회전!" "그건 간판이 아니잖아" 하고 똑순이가 야무지게 지적했다. 엄마는 "알았어. 다른 것 읽을게" 하더니 "스타벅스" 했다. "그게 어디 있어?" 하고 아이가 물었다. 엄마가 "저기 있잖아. 영어로 쓰여 있잖아"라고 했다. 아이는 "영어 읽는 게 어딨어. 치사해!" 하고 말했다. 엄마의 실격패였다.

부모는 아이가 자꾸 길에서 벗어나 덤불이나 자갈밭으로 가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규칙을 어기는 건 대개 어른 쪽이다. 아이도 세상에 태어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서툰 부모 노릇이 조금 나아질 것 같기도 했다.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0/20190410039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