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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아무튼, 주말] "고등학생 때 연애해보셨어요?" 친구처럼 대하는 학생들이 좋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3.16 03:01 | 수정 2019.03.16 03:18


[김형석의 100세 일기]

지난봄 강원도 양구의 한 모임에 참석했다.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예상과 달리 청중은 고등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강원도에 하나밖에 없는 외국어학교의 우수하고 장래성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요사이는 내 나이 때문인지 수강 상대방이 언제나 한 세대씩 아래로 보인다. 대학생이 고등학생 같아 보이고 고등학생은 중학생쯤으로 착각한다. 닭보다는 병아리로 보인다고 할까. 병아리와 닭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학생들에게 강연을 했다. 교육은 어떤 것이며, 인간의 성장은 나이 들수록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인간의 일생을 100리 길이라고 생각해보자. 학교교육은 초등학교가 10리, 중학교까지가 20리, 고등학교를 끝내면 30리가 된다. 대학에 안 가거나 못 가는 사람은 30리 기차를 타고 와 내리는 것과 같다.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은 10리를 기차로 더 가는 것으로 생각하자.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은 70리가 남아 있고 대학을 마쳤다고 해도 60리는 누구나 걸어가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의무교육이 고등학교까지다. 유럽에서는 대학 교육도 무상이다. 국가 지도자 양성은 정부가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많은 고교 졸업생이 대학에 가지 않는다. 일찍 사회로 나가 취직하고 결혼해 저마다 행복 갖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마치고 전문직으로 일하는 고생을 바라지 않는다. 대학 교육은 소수만 선택한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 교육이 인간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고교 출신은 평생 '나는 대학에도 못 갔다'는 열등의식을 갖기도 한다. 대학 출신은 '대학까지 다녔으니까 내 교육은 끝났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나머지 70리와 60리를 포기한다. 그 길을 자력으로 걷는 과정의 책임이 더 중하다는 게 문제다.

내 세대에는 뜻과 목적이 없는 사람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 그래서 진학하는 수도 적었으나 그만큼 사회적 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학교 교육보다 자력으로 노력한 결과로 성공한 사례도 많다. 나와 오래 친분을 유지한 김수학은 초등학교 출신이면서 대구시장, 경북도지사, 국세청장, 토지개발공사 사장과 전국적 정신 지도자의 위치인 새마을본부에서 중책을 맡기도 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진주여고 출신이다. 학교 교육에서 본다면 90리와 70리를 혼자 걸어간 지도자들이다. 기업계에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주어진 100리 길을 자신과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 가라"고 당부했다. 끝내고 나오는데 몇 학생이 하는 얘기다. "선생님, 요청이 있으면 우리 학교 전체 학생을 위해서도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세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 여학생은 "교수님도 고등학생 때 연애해보셨어요?" 한다. 내가 "윤동주 시인과 함께 공부한 100세 교수"라고 소개됐을 때는 손뼉 치면서 함성을 질렀던 학생들이 지금은 '좀 나이 많은 친구'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덕분에 젊어진 기분이다. 그래서 선생은 한평생 학생들을 떠날 수 없다.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5/20190315016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