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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모양새’ 걱정에 "송치 미뤄달라"는 검사님... 미뤄주는 경찰

김명진 기자

입력 2019.03.19 15:31 | 수정 2019.03.20 09:55


올 초 서울고등검찰청 소속 검사 두 명이 잇달아 음주운전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한 검사는 ‘초범’이었고, 그보다 연수원 기수로 열한 기수 후배인 검사는 음주운전으로 두 번 적발된 전력이 있었다. 두 검사의 음주운전 사건은 나흘 간격을 두고서 벌어졌지만, 한 사건은 지난달 검찰에 송치됐고, 다른 사건은 조사를 끝냈는데도 아직까지 송치되지 않았다. ‘두 사건을 한꺼번에 송치하지 말고 최대한 텀(term·기간)을 두고 (송치)해 달라’는 선배 검사의 요청 때문이다.



정모(62·사법연수원 13기) 검사는 ‘숙취 운전’으로 입건됐다. 지난 1월 23일 오전 8시 30분쯤 서울중앙지법 별관 근처 도로에서 승용차를 몰다가 다른 차량과 추돌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가해자인 상대 운전자가 "음주운전이 의심된다"고 경찰에 신고했는데, 음주 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 0.095%로 확인됐다. 면허정지 수준이다. 정 검사는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것 같다"며 "음주운전이 맞는다"고 혐의를 인정했다. 김모(55·24기) 검사는 같은 달 27일 서초동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접촉 사고를 냈다. 피해자가 김 검사의 차량을 멈추게 한 뒤 차에서 내리라고 하며 "음주운전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집으로 도주했다. 출동한 경찰이 김 검사의 집으로 찾아가 음주 측정을 시도했지만, 김 검사는 음주 측정을 거부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실랑이 끝에 측정한 김 검사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264%, 면허취소 수준이었다.

경찰은 김 검사 사건을 지난달 28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정 검사는 사건 발생 43일만인 이달 7일에서야 조사를 마쳤다.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겠다는 결론도 냈다. 하지만 송치는 미뤄졌다. 정 검사가 "김 검사와 또다시 엮이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 같다"며 "송치를 최대한 늦춰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 조직의 이미지와 자신의 평판에 누가 될까 우려하는 것 같다"며 "이달 말쯤 송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현직 검사의 요청에 경찰이 송치를 미뤄주는 것은 특혜라 는 지적이 나온다. 비교적 사실관계가 단순한 음주운전 사건 처리를 두고 통상적인 절차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운전을 엄벌에 처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정 검사는 김 검사와 달리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최대한 배려해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 검사는 "부탁을 한 것이지 검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9/20190319020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