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백건 기자 박해수 기자
입력 2019.02.15 03:23 | 수정 2019.02.15 13:47
작년 8월 해외 가려던 한 판사, 공항서 수속 중 '날벼락 출금'
양승태 대법원서 일했단 이유… 검찰, 한달 후 참고인으로 불러
A 부장판사는 작년 8월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가려 했다. 공항에서 수속을 밟던 중 법무부 직원이 그를 잡아 세웠다. "출국 금지가 돼 있으니 돌아가라"고 했다. 깜짝 놀란 A 부장판사는 "뭔가 착오가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같은 답이 돌아왔다. 가족들은 사색이 됐다고 한다. 결국 아내와 자녀만 비행기에 올랐다.
그의 출국을 금지한 곳은 검찰이었다. 지난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수사하면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그는 한 달 뒤인 9월 말 검찰 조사를 받았다.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이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지연(遲延) 논란이 일었던 일제 강제징용 소송을 검토했다. 이 사건 주심 대법관의 지시에 따라 법리 검토를 했을 뿐이었다. 검찰 조사는 한 번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는 본지에 "(출금은) 검찰 재량권을 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라도 문제 제기를 할까 검토 중"이라고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그처럼 출금(出禁)이 걸린 사실을 통지받지 못한 참고인 신분의 판사들이 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요청으로 '참고인 판사' 몇 명을 출국 금지했는지에 대해 법무부는 "수사 중이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법조계에선 검찰의 출국 금지 조치와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 출석도 거부할 수 있는 참고인을 출국 금지하고, 출금 통지도 뒤로 미루는 명확한 권한이 검찰에 있느냐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원칙적으로 참고인에겐 출금을 안 하지만 피의자와 공모했을 가능성 등이 있다고 판단되면 법무부에 요청해 출금하기도 한다.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말했다.
수사 중 하게 되는 출국 금지와 관련한 법 규정은 구체적이지 않다. 출입국관리법에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면 1개월 이내 기간에서 출금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무엇이 '적당하지 않은 출국'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누구를 출금할 것인지는 사실상 검찰이 결정하게 돼 있다. 매년 4000~6000건에 달하는 검찰의 출금 조치가 이런 식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참고인을 출금하고 통지까지 미룬 건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해당 판사는 신체·여행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침해당했기 때문에 헌법소원도 청구할 만한 사안"이라고 했다. 한 변호사는 "참고인 신분이고 도주 우려도 거의 없는데 검찰이 기계적으로 출금 조치를 한 것"이라며 "관련 규정이 모호해 검찰의 재량과 관행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교수는 "수사 편의를 위해 그렇게 한 느낌도 들지만 검찰이 해당 판사의 혐의가 작지 않다고 판단해 그리했다면 법상 문제 삼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이 A 부장판사에게 조사 전까지 출금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검찰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다. 다만 내용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출입국 관련 법령에는 '범죄 수사에 명백한 장애가 생기거나 공공의 이익에 위해(危害)가 생길 우려가 인정되는 경우' 통지를 미룰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명백한 장애'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언제 통지할 것인지도 검찰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출국 금지가 된 걸 모르면 중요한 약속이나 계약을 하지 못해 정신적, 금전적 피해가 생길 수 있다"며 "출금 통지를 유예하는 일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한 변호
사는 "검찰은 수사 보안을 이유로 누구에게든 출금 통지를 뒤늦게 하는 관행이 있다"며 "출국 금지와 관련한 검찰 재량이 너무 크다"고 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A 부장판사는 참고인 신분이었지만 주요 수사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3차례 조사했다"며 "수사 밀행성 등을 고려해 출금 사실을 사전에 통보하는 일은 거의 없다. 판사들에게도 똑같이 한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5/20190215002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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