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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13번방 선생님' 덕에 우울증 나았는데…" 환자들의 눈물

원우식 기자  이승규 기자

입력 2019.01.04 03:01


임세원 교수에 진료받았던 환자 추모 발길 이어져



숨진 임세원 교수에게 과거에 진료를 받았던 환자 김모(40)씨가 임 교수를 생각하며 찍은 사진. /이승규 기자


"임세원 교수님은 새하얀 눈[]처럼 부드러운 분이셨어요." 3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에 마련된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빈소. 김모(·40)씨는 흰색 서류 봉투에서 경기도 김포성당이 담긴 설경(雪景) 사진 5장을 꺼냈다. 김씨는 2008년부터 5년간 임 교수에게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부드러운 눈을 닮은 선생님께 감사 선물로 드리고 싶어 찍어둔 사진이었는데 영정에 두고 가게 될 줄은 몰랐네요." 김씨는 "대인 관계가 서툴렀던 내가 결혼을 하고 지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 모두 임 교수님 덕분"이라고 했다.

지난달 31일 진료 도중 환자 박모(30)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 교수 빈소에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3일까지 빈소를 찾는 조문객 5명 중 1명이 임 교수의 환자였다. 이미 완치돼 몇 년 만에 임 교수를 찾은 사람도 있었다. 동료 의사들은 "의사 장례식장에 환자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오는 건 처음 본다"고 했다. 빈소를 찾은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임 교수를 '13번방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서울 서대문구 강북삼성병원 3층에 있는 임 교수의 진료실 번호가 13번이다. 3년째 임 교수의 진료를 받아온 한 40대 여성은 "13번방 선생님은 허리가 안 좋으셔서 진료 중에도 움직이는 걸 힘들어하시곤 했다"고 기억했다. 임 교수는 만성 허리디스크를 앓았다. 그러면서 "다른 교수님들과 달리 매번 차트를 간호사에게 직접 가져다줄 만큼 권위적이지 않은 분이셨다"고 했다.


우울증 치료를 받는 아내를 따라 병원에 다녔던 백용(75)씨는 "다른 교수들은 5~10분이면 진료가 끝나는데 임 교수님은 20~30분이 기본이었고 항상 일어나서 인사로 맞아줬다"며 "아픈 아내를 대신해서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혼자 조문을 왔다"고 했다. "진료 시간이 지나 병원에 도착했는데, 13번방 선생님은 '어서 오세요'라며 특별 진료를 해줬다"는 환자도 있었다. 임 교수에게 10년 동안 공황장애 치료를 받은 이혜경(54)씨는 "오늘(2일) 원래 선생님과 진료가 잡힌 날인데 변을 당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로 왔다"고 했다. 이씨는 "집에서 조금씩 더 먼 곳을 가보면서 두려움을 없애기로 선생님과 약속해서 지난주엔 속초를 다녀왔다"며 "멀리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씀드리면 자기 일처럼 좋아하시던 선생님의 표정이 생생하다"고 했다.

임 교수의 대학 동기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교수는 "환자들이 누구보다 더 슬퍼하고 누구보다 먼저 빈소로 달려와 주는 모습은 다른 의사들에게도 귀감이 된다"며 "고인은 자신에게는 엄격해 완벽한 진료를 하면서도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너그러웠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강북삼성병원 관계자는 "사고 이후 병원 측이 임 교수 환자들의 진료 일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사망 사실을 알게 된 환자들이 빈소를 찾고 있다"고 했다.

임 교수는 2006년부터 강북삼성병원 정신과에서 일했다. 우울증, 공황장애 치료 분야의 권위자로 꼽혔다.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하고, 자신이 겪은 우울증 경험을 담아 책을 쓰기도 했다. 임 교수의 영결식은 4일 오전 7시 열린다. 이후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돼 안치될 예정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4/20190104002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