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시인·궁리출판 대표
입력 2019.01.01 03:01
2019 己亥年, 돼지를 말하다
이제껏 숱하게 해온 동작이다. 아침에 눈을 뜬다. 도대체 정신은 주인 몰래 그 어디 바깥을 둘러보고 왔을까. 간밤 둥그스름한 달과 동그란 태양은 궁합을 맞추며 걸었나 보다. 이제 그 둘과 짝을 이루며 두 눈알도 핑그르르 호응한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면서 몸을 웅크렸다가 그 반동으로 일어난다. 이 유구한 동작은 둥근 지구와 맞물리는 행위다. 운 좋은 날에는 일어나면서 기발한 문장을 붙들기도 한다. 그제는 문득 이런 정확한 생각을 건졌다. 자네도 이제 환갑이야!
2018. 이는 그저 단순한 기호일 뿐이다. 올해도 간지를 살피고 24절기를 몸에 밀착시키고자 하였지만 잘 안 되었다. 직진하는 시간에 꿰여 발버둥치다가 또 한 해를 탕진한 느낌이다. 먹을 갈아 기해년 돼지띠라고 써보면 새삼스러워진다. 60년 전 나를 배출했던 기해년을 맞이하는 감회가 새롭다. 2018년은 또 만날 수 없겠지만 아들과 딸은 기해년이 돌아오면 제 아버지를 추억하겠지.
늘그막에 뜻밖의 친구를 얻었다. 한자에서 한문으로 공부를 옮기면서 만난 그이는 박외부(朴外訃)씨다. 이름은 내가 명명했다. 짐작하다시피 '점 복(卜)'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한자들이다. 이 삼총사에는 외부로 연결된 친근함이 있다. 나무의 바깥, 저녁의 바깥, 말의 바깥. 남은 생이 머지않아 차곡차곡 밟아야 할 단계를 요약하는 동무들이다.
내친김에 한문으로 촉발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초등학교 때 자유교양경시대회에서 공자를 만난 이래, 미련하게도 '논어'는 아는 척하며 그저 발췌독이나 하는 정도에 머물렀었다. 처음으로 '논어'를 완독하며 임서한 건 지난해였다. 학이(學而)에서 요왈(堯曰)까지, 스무 개의 마을을 머릿속에 짓고 나니 기분이 아주 뿌듯했다. 이 뒤늦은 독후감을 어찌하나. 구구단을 외듯 더듬더듬 낭송하다가 이런 질문이 불쑥 생겼다. '논어'의 첫 글자는 학(學)이다. 세심한 편집을 거친 '논어'에서 이는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한편, 학이편 제1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아닐 불(不)'이다. 왜 처음부터 부정문의 형식일까.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아니다'는 '그렇다'보다 훨씬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부정문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다음을 궁리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러니 강조나 강한 긍정을 뛰어넘는 모종의 함의가 있는 건 아닐까.
돼지로 상징을 삼은 기해년을 숫자가 아니라 말로 불러주면 족보 있는 시간으로 전환되는 듯하다. 아침마다 반복한 저 동작들이 크게 한 바퀴 굴러 큰 매듭을 이룩했으니 올해는 특별히 나이가 주는 시간의 바깥을 헤아려 보라는 뜻으로 나는 이해한다. 어쩌면 '논어' 곳곳에 소금처럼 뿌려진 '아닐 불'의 소임도 이와 연결시킬 수 있으리라. 이것은 자동차의 백미러
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차는 앞으로 달리도록 고안되었지만 뒤를 볼 수 없다면 안전 운행을 담보할 수 없다. 종점을 향하는 차와 저녁으로 저물어가는 몸은 결국 같은 운명이다. 세파를 뚫고 전진해야 하는 몸에 달린 귀는 모양도 기능도 백미러와 퍽 닮았다. '이순(耳順)'이라고 표현하셨던가. 내 생의 둘레를 만지는 기분으로 반달 같은 귀 둘레를 쓰다듬어 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1/20190101000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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