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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김경준의 리더십 탐구] '친목회 회장님'과 '수도승 부회장'의 공통점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입력 2018.10.23 03:13


이나모리 회장, 친목회 열고 선물 나누는 '스킨십의 達人'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회식·골프 없이 탐구하는 '사색형'
수십 년간 주위 시선 개의치 않고 '자기 방식' 실천하는 건 닮은꼴


# 이나모리 가즈오(86) 회장은 1959년 교세라를 창업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면서 여태 한 명의 정리해고도 하지 않았다. 매년 흑자를 냈다. 그가 꼽는 원동력은 독특한 '친목회 문화'이다. 교토 시내 교세라 본사 건물 12층 복도 안쪽에는 100장의 다다미가 깔려 있는 큰 방이 있다. 잘한 건 칭찬하고 모자란 건 더 열심히 하자는 긍정적 문화를 조성하고 형제·가족처럼 가까워지는 걸 목적으로 한 친목회가 열리는 곳이다. '대화 주제'와 '시간 배분표'를 정해놓고 부장·팀장이 일어나 돌면서 직접 술을 따라주고 대상별로 맞춤형 대화를 하는 게 일반회식과 다르다. 계절 요리를 가끔 곁들이지만 메인 요리는 항상 스키야키나 샤부샤부이다. "같은 음식을 갖고 서로 그릇에 담아주고 나눠 먹으며 정(情)을 쌓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나모리 회장은 지금도 건강만 허락하면 매월 1회 열리는 임원 '친목회'에 필참한다. 명절이나 연말, 외부에서 받은 선물과 증정품은 모두 이 자리에 모아 전 직원이 나눠 갖도록 사칙(社則)으로 정해놨다. 친목회 방은 전국 주요 사업소에도 있다. 이나모리 회장은 "창업 초부터 친목회를 열어 직원들을 일일이 격려하며 회사 이슈 등을 얘기하다 보니 모든 임직원들이 서로 같은 목표, 같은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일본항공(JAL) 회장을 맡았을 때도 그는 1000엔씩 회비를 모아 임직원들과 친목회를 계속 열었다.

# 한국P&G 총괄사장과 해태제과 대표이사를 거쳐 2005년 1월부터 LG생활건강을 이끌고 있는 차석용(65) 부회장은 지금까지 14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매출과 이익을 키워왔다. 그 기간에 주가는 4400% 정도 올랐고 2004년 544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올해 1조원 돌파가 유력하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그의 회사 출퇴근 시간은 오전 6시와 오후 4시로 한결같다. 술, 담배, 골프, 회식, 의전(儀典)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퇴임하는 임원들과 연말에 간단한 송별 모임을 하는 게 연중 회식의 전부다. 오전 8~11시, 오후 1~4시로 보고 시간을 정해 놓고, 나머지 시간은 사내에 있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고수한다.


차 부회장은 그 이유에 대해 "새로움과 강한 임팩트를 낳으려는 절박함과 그런 고민의 극대화를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대신 매월 럭셔리·헬스·미용 분야의 10여 개 외국 전문 저널과 국내외 서적 10여 권을 정독한다. "고객들과의 눈높이를 맞추고 사업 전략과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취임 후 그가 단행한 20여 건의 기업 인수합병(M&A)은 모두 적중했다. 시장에선 '차석용 매직(magic·기적)'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나모리 회장과 차 부회장은 여러 면에서 정반대이다. 창업자 오너와 전문 경영인, 친근한 스킨십과 고독한 사색형, 안정적 성장과 적극적 M&A 등이다. 경영 스타일은 정반대여도 주위의 시선과 평가, 수군거림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10년, 50년 넘게 실천하고 있다는 점은 서로 닮았다. 우리나라 산업화 시기에도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은 성품과 경영관 등이 대조적이었지만 막상막하의 큰 성취를 이뤄냈다.

흔히 리더라면 훤칠한 외모와 활달한 성격, 능숙한 언변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외적 매력은 내적(內的) 덕목이라는 태양에 반사되는 달빛에 불과하다. 리더십을 형성하는 3대 요소는 '힘-신뢰-통찰'이다. 이나모리 회장과 차 부회장은 이 세 가지를 잘 구사하는 '달인(達人)'이다. 힘은 권한과 결단력에서 나온다. 부여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 조직은 표류한다. 미 해병대에는 '70% 규칙'이 있다. 70% 확신이 들면 95%까지 기다리지 말고 결정하고 실행하라는 것이다. 유약한 리더의 습관화된 결정 지연은 조직에 해 악이다. 신뢰는 조직원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며 솔선수범하면 신뢰는 배가된다. 통찰은 업의 본질을 이해하고 미래를 열어나가는 지적(知的) 능력이다. 통찰력이 결여되면 다음 세대가 성장하지 못하고 현재에 안주하다가 소멸하기 십상이다.

한국의 리더들이여! 학습과 노력으로 자기 결정력을 높여라. 신뢰로 조직 에너지를 결집하고 통찰력으로 미래를 개척하라!


이나모리 가즈오, 차석용, 이병철, 정주영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2/20181022035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