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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윤대현의 마음읽기] 올 추석엔 가족끼리 타임캡슐을 만들어보자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 2018.09.20 03:11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지만 生存 위해 반응하는 증거성숙에 이르게 하는 힘이기도
명절 스트레스인 '잔소리' 대신 좋았던 일을 타임캡슐에 넣어 내년 추석에 열어보면 좋을 것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충격적인 경험으로 인했던 심리적 고통이 지속적으로 현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태이다. 군인이 참전 후에도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현실과 꿈에서 떨쳐버리지 못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안타까운 상황이 한 예라 할 수 있다. 질환으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어도 인생을 살다 보면 다양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의 스트레스 관리라 생각되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은 이야기다. 산다는 것이 스트레스의 연속이고,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생존을 위해 반응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기에, 살아 있는 한 스트레스는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삶 속에서의 스트레스 관리는 스트레스 자체를 줄이는 것보다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자존감, 공감 능력, 긍정성 같은 마음의 순(順)기능들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에 목표를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외상후성장'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즉 삶의 고통이 마음의 순기능을 강화시켜 심리적 성장을 이루는 현상이다. 삶의 고통을 일부러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기왕 부딪쳐야만 하는 스트레스라면 그 경험이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외상후성장이 가능한 것은 스트레스를 삶의 의미로 전환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겪는 삶의 스트레스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실연(失戀)을 경험한 후 마음에 통증을 느낄 때 '이런 일로 아파하다니 난 너무 어리석고 약해. 이 모양이니 실연이나 당하지'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좋지 않다. 가뜩이나 통증을 느끼는 마음에 내가 한 번 더 상처를 내어 심리적 외상을 키우게 된다.



이보다는 '헤어짐은 실패가 아닌 사랑의 한 과정이야. 만남을 가졌을 때 행복했던 것처럼 실연 후 통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고 과정이야'라 생각하는 것이 마음의 통증을 성장으로 이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만이 행복한 삶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여러 감정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경험이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내 통증에도 의미를 부여해 성장에 이르게 한다.

며칠 후 찾아올 추석 명절은 과거 농경사회에선 수확을 앞두고 스트레스에 지친 마음을 함께 위로하던 힐링타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지금은 명절이 스트레스라 하니 웃픈 현실이다. 명절 스트레스 중의 하나가 잔소리다. 사랑하고 걱정하기에 나오는 충고이지만 너무 직접적인 소통은 오히려 사랑하는 가족의 자존감을 떨어트릴 수 있다. 그러면 삶의 동기(動機)도 떨어져, 좋은 변화를 위해 한 내 충고가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보다는 '요즘 학교 생활이 어떠니', '결혼 할 거냐 말 거냐'보다는 '어떤 이성상이 맞는 거 같니' 같은 열린 질문과 여기에 곁들인 경청, 그리고 마지막에 살짝 내 의견을 섞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란 말처럼 삶의 의미는 스트레스를 성장으로 이르게 하는 힘이다. 어떤 일을 하느냐는 내 삶에 의미를 가져다준다. 그런데 일만큼이나 경험도 의미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자연, 문화, 사람과의 경험이 삶의 의미를 북돋아 준다는 것이다.

이번 추석엔 잔소리 대신 훤한 보름달을 보며 올해 내 삶에서 제일 속상했던 일, 제일 좋았던 일을 한 가지씩 돌아가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권해드린다. 마음을 나눌 때 자연스럽게 사회적 회복 탄력성이 강화된다. 통증에 의미를 부여해 심리적 성장으로 이끄는 잠재력, 회복 탄력성이 타인과 함께 마음을 나눌 때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나눈 이야기들을 종 이에 적어 타임캡슐처럼 보관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그다음 추석 명절에 열어보는 것이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소소한 것에도 행복해했던 자신을 발견하며 다시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찾을 수도 있고, 일 년 전의 스트레스가 때론 성장의 에너지로 활용된 것을 보면서 내 삶이 의미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9/20180919040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