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문화2부장
입력 2018.09.18 03:14
하루 3시간씩 스마트폰 보면서 가족과는 13분 보내는 아이들
영화 '서치'의 실종된 딸도 온라인에만 진짜 고민 털어놔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아이의 속마음을 헤아려야 소통 가능
"아이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묻는다면 부모들은 뭐라고 답할까. 대개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할 것이다. 미국 영화 '서치'는 이렇게 되묻는다. "소셜미디어 속 당신 아이에 대해서도 잘 압니까?"
할리우드 스타 존 조(한국명 조요한)를 비롯한 한국계 배우들이 여럿 출연한 영화로도 화제가 된 '서치'는 국내에서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250만 관객을 모았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흥행 5위에 올랐다. 영화는 엄마가 암으로 숨진 뒤 아빠와 둘이 살던 고1짜리 딸이 어느 날 사라지자, 이를 찾아 나선 아빠 이야기다. 모든 장면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또는 CCTV 화면으로 이뤄져 있다. 형식적으로도 새로운 연출이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도 딱 들어맞는 아이디어다. 첫 장면은 파란 하늘 아래 초록 언덕이 있는 컴퓨터 바탕화면이다. 다섯 살짜리 딸을 가족 컴퓨터에 사용자로 등록해주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어 젊은 엄마가 암 선고를 받아 입원하고 건강을 회복했다가 재발하는 과정, 그리고 영영 가족을 떠나는 것까지 컴퓨터 화면 위에서 마우스 포인터와 커서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이를테면 캘린더에 '엄마 퇴원'이라고 쓴 글자가 몇 번 미뤄지더니 결국 휴지통에 들어가는 식이다.
서치, 존 조
친구 집에서 스터디 모임이 있어 늦을 거라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아이는 사라진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단순 가출일 수도 있다"고 한다. 아빠는 단호히 외친다. "내 딸은 내가 알아요. 가출할 애가 아니라고요." 아빠는 그러나 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음을 금세 깨닫는다. 딸의 친구 이름이나 전화번호도 하나 알지 못한다. 믿을 것이라곤 딸의 노트북 컴퓨터뿐이다. 아빠는 딸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페이스북을 차근차근 뒤져 나간다. 그러고는 소셜미디어 속 아이의 세계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아이가 왜 6개월 전 피아노 레슨을 말없이 그만뒀는지, 매주 100달러씩 준 레슨비를 어떻게 썼는지, 친구 집에서 공부한다던 그날 밤 어디 있었는지….
여성가족부가 지난 3~4월 초·중·고생 129만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15.2%에 해당하는 19만6000여명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과다 의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하루 3~4시간을 크고 작은 LED 화면을 쳐다보며 지낸다. 게다가 중독 연령대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연세대 김재엽 교수가 작년 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중독 증상을 보인 중·고생들은 하루 3시간 38분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비중독'으로 분류된 아이들도 하루 1시간 42분을 스마트폰에 매달렸다. 한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5월 초·중·고생 571명을 조사한 바로는, 아이들이 하루 평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단 13분에 그쳤다. 통계청 조사로도 '학생 자녀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시간'은 2009년 하루 59분에서 2014년 29분으로 반 토막 났다.
영화 속 딸 역시 아빠에게는 고민을 말하지 않는다. 현실 속 친구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 속 '친구'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친구는 암 투병 중인 엄마 병원비를 대려고 주 25시간이나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를 이해해 줄 완벽한 친구다. 아이는 점점 더 스마트폰 속으로 빠져든다. 아이가 납치돼 살해당했다고 경찰이 발표하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딸의 행방을 묻는 아빠에게 "모른다" "친하지 않다"던 학교 친구들이 일제히 소셜미디어에 글과 영상을 올린다. 너무 슬퍼, 보고 싶다, 사랑한다, 너는 정말 좋은 친구였어, 기도할게…. '현실의 나'들과 '보여주고 싶은 나'들이 정면충돌하며 객석에 환멸을 퍼뜨린다. 느닷없는 익명의 판관(判官)들은 "아빠가 범인" "저런 사건은 대개 가정 문제"라며 싹둑 결론 내 버린다.
딸의 소셜미디어 비밀번호를 모르는 아빠가 엄마의 옛 이메일 계정을 통해 재설정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복
선이자 메시지다. 아빠는 시간이 가족의 아픔을 해결해 주리라 생각했고, 딸은 여전히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이가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다면,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 속 커서를 움직이고 타이핑을 하는 사람은 아빠다. 마지막 장면에서야 그 주인공이 딸로 바뀐다. 두 사람이 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7/20180917033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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