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사 기자
입력 2018.06.30 03:02
[Why 잠금해제] 수감자 '심부름 대행사' 가보니…
사기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받고 안양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A씨는 지난 2016년 몰래 교도소로 휴대전화를 들여왔다. 교도소 안에 드나들며 생활 물품, 옷가지 등을 만드는 교도 작업 위탁업체 직원을 포섭한 뒤 그가 교도소 내로 가져온 휴대전화와 무선 공유기를 건네받은 것이다. A씨는 교도소 내 작업장이나 화장실 등에서 전화나 카카오톡 메신저를 주고받고 수용실 내에선 태연히 인터넷 검색을 했다. 지난해 9월엔 여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B씨가 교도소 내로 음란 사진을 들여왔다. '옥바라지 업체'라 불리는 심부름 대행업체를 통해 사진을 들여온 B씨는 다른 수용자들과 이를 돌려 봤다. 구치소나 교도소 등 교정 시설 안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음란물을 보는 일이 가능할까.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내용이지만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교정 당국이 금지 물품 반입 적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5만여 수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데는 한계도 있다. 특히 금지 물품 반입 등을 돕는 옥바라지 업체가 생기며 법망을 교묘하게 파고들고 있어 당국도 골머리를 앓는다.
금속 탐지기도 거뜬히 통과
'옥바라지'가 하나의 업종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2008년. 면회가 어려운 수용자 가족 등을 위해 영치금이나 영치품 넣는 일을 대신해주는 민원 대행업체가 만들어진 것이 시초라고 한다. 신문과 인터넷에 광고도 등장했다. 돈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각종 심부름센터가 몰려들며 불법적인 일까지 하는 변종 업체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업체 3곳을 접촉했다. 옥바라지를 도와준다고 소셜 미디어 등 인터넷에 광고를 하고 있는 곳과 지난해까지 옥중 생활을 한 이들이 직접 이용했다고 말한 곳들이다. 이 업체들은 공통적으로 ▲수용자에게 도서를 지급하고 ▲펜팔 친구를 만들어주며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고 ▲각종 심부름을 한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각종 심부름에는 탄원서 작성이나 피해자와의 합의를 도와주는 일, 자산 관리 등이 포함된다고 했다. 교도소 내에 원하는 물품을 전달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한 곳에서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제는 10만원 단위로 적립금을 받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수용 생활이 적어도 수개월 이어지기 때문에 계속해 돈을 주고받기보다는 뭉칫돈을 받는 게 편하다는 것이다. 도서나 합법적인 물품은 정가에 배송 비용 등이 추가되고, 반입이 어려운 물품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한 번에 수백만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떻게 물품 반입이 가능한 것일까. 전국 53개 교정 시설에는 수용자와 정문 출입자를 대상으로 금지 물품 반입을 검사하기 위해 금속 탐지기 310대가 설치돼 있다. 금속 탐지기 통과자 중 이상 반응자 확인을 위해 휴대형 금속 탐지기 1624대, X레이 검색기 2대도 작동 중이다. '교정 장비 관리 지침' 등을 보면 금속 탐지기는 접견 전후, 운동 전후, 일과 시작 전후 등 수용실에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올 때 사용하게 돼 있다. 금지 물품이 반입된다는 것은 이를 모두 무력화시킨다는 얘기다.
옥바라지 업체와 지난해까지 수감 생활을 했던 김정호(가명)·이서영(가명)씨의 말을 재구성하면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는 '노하우'가 여러 개 퍼져 있다고 한다. 예컨대 겨울철 누구나 지니고 다니는 '○○'과 같은 물체 등에도 금속 탐지기가 반응한다는 점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몸에 ○○에서 나온 가루 등을 묻히고, 다른 물품 탓에 신호가 울렸다고 말하면서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대전교도소와 인천구치소는 아예 전원을 꺼놓거나 고장 등으로 금속 탐지기가 작동하지 않아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외부인에 대한 허술한 소지품 검사도 틈이 된다. 수용자뿐 아니라 외부인들도 정문 검색 시 소지품을 검색하게 돼 있지만 금속 탐지기만 통과시킬 뿐 적극적 몸수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도관이 수용자 가족이나 변호사, 위탁업체 직원, 종교 행사 등 각종 행사를 위해 방문한 이들의 몸수색까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일선 교도관은 "문제가 되는 물품을 빼라고 얘기할 뿐 직접 몸수색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음란 서적, 사진도 기승
옥바라지 업체가 수용자들에게 보내는 물품에는 성인 만화 등도 포함돼 있다. 신체의 은밀한 부위나 성행위 등이 그려져 있어도 유해 간행물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반입이 가능한 것. 지난 2014년 연쇄 살인마 유영철이 옥바라지 업체를 통해 성인 잡지와 만화 등을 주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유영철은 수위가 센 사진을 다른 잡지에 끼우는 형식으로 교도소 내 반입을 시도했다. 옥바라지 업체 관계자는 "성인 만화의 경우 안양교도소 등 반입이 어려운 특정 교정 시설이 있지만, 대체로 가능하다"고 했다. 최근엔 일반 젊은 여성의 얼굴이나 몸매가 드러난 사진을 옥바라지 업체에서 제공하기도 한다. 업체가 소셜 미디어 등에 올라온 일반 여성의 사진을 모아 카탈로그처럼 만들고, 이 중에서 수용자가 원하는 이를 선택하면 '제품'을 전달하는 식이라고 한다. 사진 전달은 주로 편지가 이용되고, 가끔은 도서 사이에 섞여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적발은 쉽지 않다. 사진 속 여성이 가족이나 애인이라고 이야기하면 압수하기 어렵다는 것. 교정 당국 관계자는 "특정 신체 부위 등이 부각된 사진 등은 모두 막고 있지만, 이 외의 일반인 사진을 모두 막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런 사진은 수용자들 사이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수용 경험이 있는 이서영씨는 "영치금이나 물품, 우표 등으로 이런 사진을 사고판다"고 했다. 사진은 수용자들의 성적 욕망 해소의 대상이 된다. 여기엔 성범죄자들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를 처벌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처벌할 법 조항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평원의 김보람 변호사는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초상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제기는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형사적 처벌은 어렵다"고 했다. 법무부는 "음란성·폭력성이 지나치게 묘사된 도서를 제한하는 내용으로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이고, 일반인 사진첩 등에 대해서도 최대한 점검을 해 반입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마 유영철, 김보람 변호사, 안성훈 형사정책연구원
장비 확충과 인력 충원 필요
감사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수용자가 금지 물품을 가지고 있다가 적발된 사례는 138건. 여기에는 휴대전화, USB, 음란 사진, 음란 잡지, 주류 등이 포함돼 있다. 교정 당국 관계자는 "이제까지 물품 검사는 교도관들의 직감과 수용자들 사이의 제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경력 있는 교도관들이 낡은 기계나 인력 부족을 경험으로 채워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수용자들의 눈속임 방법도 발전해 더는 감이나 제보에 의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했다. 일선 교도관들은 X레이 검색기 등 장비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항·항만에서 승객 수화물을 검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장비 등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구치소와 동부구치소 등 2곳에서만 X레이 검색기가 운영되고 있다. 법무부는 "점진적 도입을 위해 기획재정부에 관련 예산을 신청해 둔 상태"라고 했다. 교정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8일 기준 교도소·소년원 등 교정 시설에 수용된 인원은 총 5만5210명. 본래 적정 수용 인원은 4만7820명으로 정원 대비 20% 이상 인원이 많다.
교정 공무원은 1만5847명으로 공무원 1인당 3.5명의 수용자를 맡는 셈이다. 이는 호주(3.0명), 일본(2.8명), 영국(2.4명), 독일(1.7명)보다 높은 비율이다. OECD 국가 중 우리가 가장 높
은 편에 속한다는 게 법무부 측 이야기다. 일선 교도관은 "수용자들의 서신이나 도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한 명뿐인 곳이 많다"며 "이들이 모든 금지 물품을 걸러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고 했다. 안성훈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용 인원이 과밀화되면 교도관들이 보안과 질서 유지라는 소극적 구금 위주의 업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9/20180629016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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