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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눈치 빠른 로펌들 "경찰출신 대환영!"

조백건 기자

입력 2018.06.29 03:01


'힘 빼기, 힘 싣기' 분위기에 대기업 수사도 경찰이 주도
수사팀과 소통 어려운 고위직보다 인맥 넓은 일선 수사과장이 인기


요즘 법조계에선 경찰 출신들이 대형 법무법인(로펌)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말이 돈다. 주요 로펌들은 그동안 판검사·변호사를 제외한 일반 공무원 중에선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출신 등을 많이 뽑아왔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대형 로펌 취업자 중에 경찰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경찰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말이 나온다. 국내 로펌 중 가장 큰 김앤장은 작년부터 올 4월까지 총 6명의 전직 경찰을 뽑은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2명에 이어 올해 4명을 영입했다고 한다. 올해 들어 김앤장이 뽑은 전직 공무원(6명) 중 66%가 경찰 출신인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은 같은 기간 4명의 전직 경찰을 채용했다고 한다. 올해에만 2명을 뽑았는데 올해 채용한 일반 공무원 출신(4명)의 절반이다. 법무법인 세종로고스도 작년부터 최근까지 각각 1명 이상의 경찰 출신 간부를 데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로펌들이 경찰 출신 영입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전보다 '경찰의 힘'이 세졌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예전에는 경찰이 자기들이 수사한 사건에 대해 기소·불기소 등 어떤 의견을 내든 최종 결정은 검찰이 내렸다. 한 로펌 변호사는 "이제는 경찰이 의견을 달아 사건을 송치하면 검찰이 쉽게 뒤집지 못한다"며 "로펌으로선 경찰 단계에서부터 적극 대응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올해 들어서만 KT·한진그룹·현대건설 등의 오너 및 임원을 겨냥한 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고 있다. 과거 대기업 수사는 검찰이 주로 했다. 그런데 '검찰 권한을 경찰로 넘긴다'는 공약을 내건 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경찰도 대기업 수사에 적극 나서고 있다. 로펌 입장에선 '돈이 되는' 대기업 사건을 경찰이 많이 하기 때문에 더 관심을 두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과 1차 수사 종결권을 주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案)을 발표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법률 시장에서 경찰 출신 몸값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형 로펌들이 뽑는 경찰 출신의 면면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전직 경찰청장 등 경무관 이상의 고위직을 영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올 4월까지 주요 로펌에 들어간 경찰 간부들은 대부분 일선 경찰서 과장(경정) 이하의 실무급이었다고 한다. 한 로펌 변호사는 "요즘은 경찰 안에서도 직권남용죄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많아 최고위급에서 수사팀에 의견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며 "차라리 인맥이 넓은 실무급을 뽑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검찰 수사관 인기는 시들해지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대형 로펌에서 검찰 수사관을 뽑은 곳은 김앤장(1명)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현 정권이 밀어붙이는 '검찰 힘 빼기, 경찰 힘 싣기'가 법률 시장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9/20180629001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