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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Why] 지상파 통해 '죽은 권력' 부관참시… '나꼼수' 추락하나

김은중 기자

입력 2018.06.16 03:03


[Why 뉴스초점] 나꼼수, 여전한 '아니면 말고'

재야에서 제도권으로
김어준 SBS '블랙하우스' 주진우 MBC '스트레이트' 김용민 KBS1 라디오 진행


2011년 4월27일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주진우 시사인 기자, 김용민 시사평론가, 정봉주 전 의원 등 4명은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라는 이름의 인터넷 방송을 시작했다. 이듬해 12월까지 계속된 70회 분량의 방송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집권 세력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핵심. 정 전 의원은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되며 '투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팩트보다는 주장이 앞섰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 덕분에 박수와 환호가 줄을 이었다. 그 후 7년. 인터넷 방송 등 비(非)주류 채널을 전전하던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한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지상파를 '접수'하며 주류가 됐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 지금은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라 '죽어 있는 권력'을 비판하며, 풍자의 화살을 쏘는 주체가 아니라 그 과녁이 됐다는 점이다. 방송 시작한 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징계와 프로그램 폐지 요구 등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 정봉주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지상파에서도 '아니면 말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상파 3사의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주요 제작진은 모두 물갈이됐다. 이후 나꼼수 출신들이 중용(重用)돼 올해 초부터 주요 지상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김어준씨는 지난 1월 18일부터 SBS에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를 진행하고 있다. 시사 교양과 예능의 결합 형식이다. 2주 후 주진우 기자도 MBC에서 '탐사 기획 스트레이트'라는 비슷한 성격의 프로를 시작했다. 약 14차례에 걸친 방송에서 자원 개발 등 보수 정권과 재벌 관련 의혹을 집중 제기 중이다. 김용민씨는 지난달 28일부터 KBS 1라디오에서 '김용민 라이브'를 맡았다.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 3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성추행 의혹으로 역풍을 맞아 한 발자국 물러나 있는 상태. 그는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7일 전원 합의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대해 관계자 징계를 방송위 전체회의에 건의하기로 했다. 관계자 징계는 방송사 재승인 때 반영되는 방송 평가에 벌점 4점을 적용하는 중징계다. 김씨는 지난 3월 22일 자 방송에서 당시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던 정봉주 전 의원의 알리바이를 뒷받침해주는 사진 780장을 단독 입수했다며 공개했다. 노골적으로 정씨를 옹호하는 방송이었다. 하지만 방송 이후 정씨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났고, SBS는 시청자와 피해자에 공식 사과했다. 심의위원회의 한 위원은 "지인(知人)을 지지하고 여론을 호도할 목적으로 방송을 악용했다"고 했다. 김씨 방송이 물의를 빚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첫 방송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친척 간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 '박 전 대통령이 배후에 있다'는 식의 의혹 제기를 했다. 그러면서 이를 증명해줄 제보자나 제보 내용에 대해서는 '교차 검증이 불가능하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당시 사건 수사를 한 경찰 관계자는 "제3자가 범행에 개입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했다. 그의 프로그램에선 리포터가 정치인 등을 직접 찾아가 조롱 섞인 질문을 던진다. 질의라기보다 '망신 주기'에 더 가깝다. 주로 야당 국회의원이 대상. 지난 3월 1일과 3월 8일 자 방송에서도 야당 의원을 상대로 인터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막 편집 등을 통해 이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다. 방심위는 이에 대해 "정치인에 대한 희화화가 과도하다"며 행정 지도 중 권고 결정을 했다. 편파성 때문에 SBS 내부에서도 비판이 크다. 박정훈 SBS 사장은 "출발부터 편향된 프레임을 갖고 누가 봐도 공정하지 못한 방송을 하면 사측에 부담이 된다"며 "(프로그램의) 편향성이 고쳐지지 않으면 없애야 한다"고도 했다. SBS 노사는 김씨 프로그램의 편향성을 인정하고 사내에 '공정방송 실천협의회'를 꾸리기로 했다.

거듭되는 헛발질과 늘어나는 피해자

주진우씨는 지난 4월 22일 자 MBC '스트레이트' 방송에서 "삼성이 전경련을 통해 우파 성향 커뮤니티와 단체에 돈을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탈북자 출신 영화감독 정성산씨의 모습을 10여 초 화면에 내보냈다. 2014년 9월 세월호 유가족 단식 농성을 비판하기 위해 계획된 우파 집회를 소개하면서였다. 방송이 나간 직후 그가 운영하는 인천의 냉면집에는 누군가 방화물질을 뿌렸고, "때려죽이겠다" 등 협박 전화만 하루 100여 통이 걸려왔다. 정씨는 "나는 이 집회에서 뮤지컬 '평양 마리아'의 티켓을 나눠주고 노래를 따라 불렀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면서 "악성 댓글과 살해 위협에 시달려 한때 폐점까지 고려했다"고 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최근 MBC에 대해 조정 결정을 내렸다. 정씨의 주장을 담은 반론보도문을 게재하라고 통보했다.

주씨는 이달 3일엔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조작 의혹을 들고 나왔다. 그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삼성'이 올랐다가 순식간에 삭제되는 현상이 계속 일어난다"며 네이버가 삼성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좌파 성향 인사들에 의해 매번 제기되는 '단골' 의혹이다. 이에 대해 네이버는 "실검 노출 이력을 모두 공개하고 있는데 MBC가 방송에 유리한 특정 수치만을 취사선택해 네이버가 사실을 은폐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고 반박했다. 네이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및 방심위 심의 요청을 검토중이고, 공개 검증도 제안한 상태다.

KBS 양승동 신임 사장은 "지난 10년 라디오의 침체를 벗어나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김용민씨 영입의 변(辨)을 밝힌 바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김씨는 과거 여러 차례 막말과 음담패설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미국에 연쇄 살인범 유영철을 풀어 부시럼즈펠드를 죽이자" "라이스(전 미국 국무장관)를 강간해서 죽이자"고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은 '한편으로 치우침 없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균형 된 시각·관점을 제시하라'고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본지의 질문에 KBS 관계자는 "팬덤이 있는 폴리테이너로서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했다"고 영입 이유를 밝혔다.

 

박정훈 SBS사장, KBS 양승동 사장, 탈북자 정성산, 부시,럼즈펠드, 라이스


'특급 대우' 나꼼수, 살아 있는 권력에는 침묵

나꼼수 출신 진행자들은 '특급 대우'를 받는다. 주씨의 '스트레이트' 출연료는 회당 6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방송가에 알려져 있다. MBC 측은 "공식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어준씨의 출연료는 따로 공개된 바가 없지만 한 방송계 관계자는 "그가 지상파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중 최고 대우를 받는다는 게 정설(定說)"이라고 했다. 김씨는 또 2016년 9월부터 서울시가 운영하는 TBS 교통방송에서 매일 아침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자유한국당은 그의 라디오 출연료가 한 해에 1억3000만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교통방송은 1년에 서울 시민의 세금 300억원을 쓰는 방송사다.

최근 '스트레이트' 시청자 게시판엔 주씨의 하차와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김부선의 피맺힌 증언과 공지영의 주장에 침묵하는 주진우는 자격이 없다'는 내용이다. 6·13 지방선거 직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자와 배우 김부선씨의 밀회설을 주씨 주도로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다. 공씨는 7일 "이재명-김부선 스캔들을 자신이 막았다는 이야기를 주진우씨 본인으로부터 들었다"고 폭로했다. 11일엔 "폭로 후 주씨에게 전화가 수차례 왔지만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였던 '나꼼수'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침묵 중이다. 주씨는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명박·박근혜의 사라진 돈을 찾 기 위해 적폐 핵심으로 뛰어들겠다"고 했다가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다. 이재명―김부선 스캔들을 한 신문의 인터뷰에서 최초 제기했던 김어준씨 역시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인터넷 방송 시스템을 무분별하게 차용할 경우 특정 정치 세력의 의견을 대변하는 장(場)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했다.

김부선, 공지영, 이재명, 황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15/20180615016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