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희 기자
입력 2018.03.26 16:56 | 수정 2018.03.26 19:35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 재수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인원이 20만명을 넘어서자, 경찰이 이 사건의 수사과정을 되짚어 보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을 통해서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이야기가 많이 나와 실무부서에 (수사과정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다”며 “결과를 보고 받아 알겠지만, 재수사가 법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 재수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인원이 20만명을 넘어섰다./일러스트=이철원
단역배우 자매 사망 사건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등에 업고 재점화했다. 사건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 청원 내용에 따르면 2004년 대학원생 A씨는 “드라마 보조출연자 아르바이트를 하다, 단역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저 12명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A씨는 피해자 조사를 받으면서 경찰로부터 ‘2차 가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 협박을 계속해서 받았다. 결국 그는 2006년 고소를 취하했고,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동생 B씨가 ‘언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충격을 받은 A 씨의 아버지도 2개월 뒤 뇌출혈로 사망했다. 일가족 3명이 연이어 숨진 것이다.
홀로 남은 A씨 어머니는 2014년 가해자들에게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3년)가 지났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가해자들은 오히려 A씨 어머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A씨 어머니는 지난해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가해자들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재수사가 가능할까.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법조인들 공통된 견해다. 우선 ①피해사실을 진술할 A씨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A씨의 과거 진술 내용을 토대로 재수사할 수는 없을까. ②A씨가 2006년 가해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점이 문제로 작용한다. 현행법은 한번 취하한 고소 건에 대해서는 재고소 할 수 없게끔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재(再)고소 금지 원칙’이다. 법원 관계자는 “‘재고소 금지 원칙’은 개인 의사에 따라 형사소송절차가 무분별하게 반복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③앞의 두 가지 문제를 접어두더라도, 공소시효 문제가 남아있다. 범행 발생시점이 2004년으로, 성폭행 공소시효인 10년을 이미 지났다.
단역배우 자매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26일 오후 20만6000여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이론상으로는 경찰 수사가 위법했다는 점을 들어, 국가배상 청구를 제기하는 방법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입증(立證)하기가 녹록하지 않다. 이명숙 변호사는 “수사관들이 고의적으로 수사를 엉터리로 했다거나 수사과정에서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는 점을 밝혀내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배상 청구도 소멸시효(사건발생 시점 이후 10년) 문제가 있다. 이 변호사는 “2011년 재수사가 이뤄진 ‘도가니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가 1년 남아있었고 새로운 증인이 나타나면서 재수사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 을 재수사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특별법을 입법해야 한다. 하희봉 변호사는 “재수사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형성된 만큼, 일단 특별법 입법부터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반면 김보람 변호사는 “재수사, 국가배상 청구보다는 오히려 국가나 사회가 피해 회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구제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철성 경찰청장, 이명숙 변호사, 김보람 변호사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6/20180326019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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