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인 기자
입력 2018.03.29 04:27
[미세먼지 공포에 이삿짐 싸는 엄마들… 주말에 이용할 '세컨드 하우스' 찾기도]
"남편과 1년 내내 고민한 끝에 아이를 위해
김포서 광양으로… 청정기 안 돌리고 창문도 활짝"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 나누고 '아이' '아기'가 연관어 1·2위
다섯 살 아들을 둔 윤모(여·38)씨 부부는 지난해 경기도 김포에서 전남 광양으로 이사했다. 호흡기가 약한 아들이 미세 먼지 농도가 치솟는 날마다 심하게 기침하며 고통스러워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윤씨는 "남편과 1년 내내 고민한 끝에 김포에서 운영하던 가게를 접고 광양으로 왔다"면서 "이사한 지 5개월째인데 더 이상 방마다 공기청정기를 돌리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창문을 열고 환기도 시킬 수 있어 100% 만족한다"고 했다. 한국환경공단 자료에 따르면 김포는 지난해 미세 먼지 고농도(일평균 51㎍/㎥ 이상) 일수가 44일인 반면 광양은 10일도 안 됐다.
미세 먼지가 삶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자녀 건강을 고려해 이사하거나, 상대적으로 공기가 맑은 곳에 '세컨드 하우스'를 구하고 이민까지 고려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이사하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빗대 '맹모삼천지미(孟母三遷之微)'라는 말도 나온다. 7만여 명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 '미세 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미대촉)' 게시판에선 "미세 먼지 때문에 이사하려고 하는데 어떤 도시가 좋나요" "직장 때문에 멀리 이사할 수 없는데 산 근처 아파트는 사정이 나을까요" 같은 질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세 먼지를 피해 제주도로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는 한 회원은 "최근 제주도로 이사 간 친구가 '1년 중 300일은 미세 먼지 농도가 낮다' '도시보다 심심하긴 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고 만족도도 높다'고 해 정말 부러웠다"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겠지만 이사 준비를 시작하겠다"고 썼다. 댓글 창에는 "(나이가 어려 미세 먼지에 취약한) 저희 막내만이라도 데려가 주세요" "일자리만 있으면 가고 싶다"는 등의 공감 글이 올라왔다. 직장·학교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이사하지 못하는 이들은 주말 동안 이용할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여의도에 사는 직장인 양모(45)씨는 최근 강원도 강릉에 전셋집을 얻었다. 양씨는 "지난해 몇 차례씩 고농도 미세 먼지가 몰려왔을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직장을 옮길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집을 빌리기로 했다"면서 "경제적으로 부담돼도 미세 먼지가 심할 때마다 집에 있어야 하는 유치원생 딸을 생각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이민(移民)을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다음소프트 송길영 부사장이 최근 발표한 빅데이터 분석 자료에 따르면, 미세 먼지와 이민을 함께 거론한 횟수는 2015년 125건에서 2016년 822건, 2017년 1418건으로 크게 상승했다. 또 미세 먼지와 함께 언급된 연관어로는 '아이'(언급량 4만3397회)'와 '아기(언급량 2만 8486회)'가 연달아 1·2위를 차지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실제로 이사나 이민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면서도 "정부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금까지와 다른 강력한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미세 먼지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28일 오후 3시 기준 청원 게시판에는 '미세 먼지'를 키워드로 한 게시물이 2000여 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중국 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촉구한 '미세 먼지의 위험 그리고 오염 및 중국에 대한 항의' 청원은 17만2435명이 동참했다.
숑영길 부사장, 최예용 소장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9/20180329001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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