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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Why] 맨날 세균오염 비교 당하는… 변기는 억울하다

전현석 기자

입력 2017.10.14 03:02


공중화장실 변기는 매일 청소하는데
걸핏하면 몇배 더럽다고

발견되는 세균 다 달라 무조건 단정하긴 어려워


이달 초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은 서울역, 시청역 등 철도·지하철역에 설치된 모유 수유실의 위생 상태를 점검한 결과 세균 오염도가 화장실 변기의 3~14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변기보다 더럽다고 알려진 건 모유 수유실뿐만이 아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이어폰, TV 리모컨, 자동차 핸들, 식당 메뉴판, 오래된 화장품, 핸드백, 교복, 베개, 칫솔, 사용한 수건, 지폐·동전, 책상, 도마, 수도꼭지, 엘리베이터 버튼 등 셀 수 없이 많다. 특정 대상이 변기와 비교해 몇 배 위생 상태가 나쁘다는 식의 국내외 연구 결과는 거의 매년 등장한다. 이것만 보면 실생활에서 변기보다 깨끗한 물건을 찾기 힘들 정도다. 과연 그럴까.

정부나 기관에서 정한 화장실 변기 청결도 기준은 없다. 각종 조사 연구 기관이 직접 화장실 변기의 특정 부분에서 균을 채집하거나 기존 조사 자료를 참고하는데, 대부분 일반 가정집이 아닌 공중 화장실 변기를 택한다. 한국화장실협회 이은주 사무처장은 "공중 화장실은 하루 최소 한 차례 이상 청소하기 때문에 자주 청소하지 않는 가정집 변기보다 깨끗할 때가 많다"고 했다.

변기에서 균을 측정하는 부분은 사람 궁둥이가 닿는 좌대다. 최 의원실은 지난 9월28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역 화장실 변기 좌대에서 측정한 오염도(951 RLU·Relative Light Unit)를 비교 기준으로 삼았는데, 화장실 청소를 한 직후여서 비교적 청결한 상태였다고 한다. 최 의원실이 같은 날 측정한 서울역 화장실 변기 오염도는 2만4732 RLU로, 용산역 변기의 26배였다. 이번에 조사한 모유수유실 위생 상태 중 가장 세균 오염도가 높았던 것은 용산역 수유실 정수기 버튼으로, 1만3476 RLU였다.

위생 청결도 조사는 거의 대부분 동일 면적에서 채취한 세균 수의 많고 적음을 비교해 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서울대 미생물연구소 천종식 교수는 "세균 종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세균이 많이 발견됐다고 해서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했다. 화장실보다 부엌에서 검출된 세균 수가 많다고 해서 화장실이 더 깨끗하다고 결론 내리기 힘들다는 얘기다. 위생 상태를 정확히 따지려면 좀 더 정밀한 실험을 거쳐 병원성 세균 유무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최도자 의원, 이은주 사무처장, 천종식 교수

공중화장실 위생 상태에 악영향을 주는 주요인으로는 변기 옆 휴지통이 지목돼 왔다. 정부는 올해 5월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내년 1월부터 공중화장실 칸막이 안에 있는 휴지통을 모두 없애기로 했다. 다만 여성용 화장실 칸막이 안에는 위생용품 수거 함을 따로 두기로 했다. 일부에선 변기가 자주 막히고 사람들이 휴지를 아무 데나 버려 화장실이 더 불결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화장실협회 이은주 사무처장은 "선진국 대부분은 공중화장실에서 대변기 휴지통을 없앤 지 오래"라며 "초기 일부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법이 잘 정착되면 공중화장실이 더 쾌적해지고 변기에 대한 인식도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13/20171013017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