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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상현의 디지털읽기] 아마존의 비밀병기… 600만 업체 대상 '무자비한' 평점 관리

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입력 2019.08.13 03:09


아마존, 민주·공화 성향 관계없이 미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조직
제대로 된 '제품 평' 유지가 핵심… 고객 위장, 조작 모두 잡아내

작년 미국의 조지타운 대학교와 뉴욕 대학교가 미국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조직이 어떤 곳인지 조사해서 발표했다. 미국인들은 정치 성향에 따라 신뢰하는 조직이 달랐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학교와 비영리 단체, 언론 등을 상위에, 공화당 지지자들은 경찰, 행정부, 종교 단체 등을 상위에 꼽았다. 의회는 공히 최하위권이었다. 그런데 두 조직만은 두 집단 모두에게서 높은 신뢰를 받았다. 하나는 ()이었고, 다른 하나는 테크 대기업 아마존이었다. 그 결과를 본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세계 최강의 미국 군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윤을 목표로 하는 사기업이 최고 수준의 신뢰를 받는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신뢰도 1위를 차지했는데,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오프라인 매장과 소상공인들을 파산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나쁘기로 악명 높은 기업을 가장 신뢰하는 조직으로 꼽았다는 건 수수께끼였다.

조사 발표 후에 쏟아진 분석을 접하면서 그 이유가 밝혀졌다. 조사는 신뢰도(confidence)를 측정하는 것이지, 호감도(likability)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즉, 특정 조직이 당신이 그 조직에 기대하는 결과를 내놓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전투에서 지지 않는 세계 최강의 미군이 미국인들에게 신뢰를 받는 건 당연하다. 군인은 이겨야 하고, 미군은 이기기 때문이다.

샘 월튼


아마존은 소비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약속하고, 지키고 있길래 신뢰를 받을까? 흔히 아마존이 최저가를 약속하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 상거래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클릭 한 번만 하면 더 싼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 인터넷 상거래를 대표했다. 하지만 이 말은 오프라인 매장의 최강자 월마트를 창업한 샘 월턴의 경영 철학을 온라인에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최저가를 보장하면 사람들을 매장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온라인에서도 통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인터넷 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그 생각이 틀렸음이 입증되었다. 소비자들은 1달러를 절약하기 위해서 복잡하고 정체가 불분명한 웹사이트를 찾아다니는 걸 싫어하게 되었고, 10달러를 더 내더라도 반송이 쉽고 상담원이 친절한 상거래 사이트를 선호했다. 주문한 제품이 약속한 날짜에 도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초기에 아마존이 미국인들의 관심을 끈 것이 최저가였다면, 그들의 신뢰를 받게 된 것은 가격이 아닌 서비스였다. 약속한 날짜에 제품이 도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인터넷 매장보다 많은 제품쉬운 검색, 비교로 '물건을 사려면 구글보다 아마존 검색이 빠르고 편리하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그리고 아마존이 자랑하는 비밀 병기가 있다. 바로 구매자들의 객관적인 제품 평이다. 잘 아는 유명 브랜드가 아닌 제품, 처음 사는 종류의 제품일수록 고객은 이전 구매자들이 남긴 평가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사이트의 댓글 관리보다 힘든 것이 제대로 된 상품 평을 유지하는 것이다. 거대한 상거래 사이트에서 돈 받고 써주는 제품 평과 조작된 별점을 잡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인력과 알고리즘을 동시에 사용해 600만개의 입점 매장들이 받는 별점을 조사해서 조작을 잡아낸다.

그런 아마존의 작업이 얼마나 인정사정없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있다. 아마존 사이트에서 같은 종류의 제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경쟁 상인을 공격할 때 그들에게 고객을 가장해서 낮은 별점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별점을 쏟아붓는다는 것. 짧은 시간 안에 대량의 최고 별점을 받으면 아마존이 곧바로 조사에 들어가고, 진짜 고객이 남긴 별점이 아닌 경우 가차 없이 아마존 내 매장을 폐쇄하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이런 무자비한 단속으로 판매자들은 하루아침에 파산하기도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마존의 별점은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마존이 별도의 사법 체계를 가진 유사 국가처럼 작동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마존은 온라인 매장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고, 그것을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서 국가기관보다 더 나은 신뢰를 얻었다. 좋아하는 것과 신뢰는 다르다. 후자는 오로지 결과물로만 얻을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12/20190812029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