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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김성윤의 맛 세상] 병 주고 약 주는 쓴맛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17.04.27 03:14


쓴맛은 있는 음식 피하는 장치
쓴맛 예민하면 식성 까다롭지만 위험한 음식으로부터 목숨 지켜줘
쓴 것 잘 먹으면 나쁜 음식에 노출, 그래도 새 먹을거리 찾는 덴 유리
모두 인류 생존하는 데 기여해 와


아들만 둘인 우리 집은 식사 시간마다 '전쟁'이 벌어진다. 아내와 두 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올해 네 살인 첫째 아들과는 '어떻게 하면 더 먹일까'를 두고 한바탕 격전이 치러진다. 녀석은 입이 짧다. 워낙 잘 먹지도 않지만, 새롭거나 낯선 음식은 아예 입에 대려고도 하지 않는다. 두 살인 둘째는 정반대다. '어떻게 하면 덜 먹일까'가 고민이다. 첫째가 '싫어' '안 먹어'를 달고 사는 반면, 둘째는 가장 자주 하는 말이 '밥 줘'와 '또 줘'일 정도로 먹성을 타고났다. 가리는 음식도, 못 먹는 음식도 없다. 이유식은 진작에 떼었고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무조건 달라고 떼쓰며 달려든다.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형제가 맞나 싶을 만큼 서로 다르다. 둘을 섞어서 반으로 나누면 딱 좋을 텐데. 선배 부모들은 하나같이 "그런 아이는 없다"고 말한다.

한동안 첫째 아들은 먹는 걸 싫어하고, 둘째는 미식가 혹은 대식가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짐작했다. 그런데 인간의 미각(味覺)을 공부하다 보니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구나'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는 모두 미각의 민감도가 다르다. 혀에는 맛을 감지하는 세포인 미뢰(味蕾·taste bud)가 있다. 맛봉오리라고도 부르는 미뢰는 신생아일 때 가장 많다. 혀의 앞면은 물론 옆면과 입천장, 목구멍 등 입안 전체가 미뢰로 뒤덮여 있다시피 하다. 유아용 분유를 먹어보면 묽고 밍밍하지만 아기들은 맛있게 먹는다. 성인보다 맛을 훨씬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미뢰는 열 살 때부터 차츰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 평균적으로 1200의 미뢰가 혀에 존재한다. 둔감한 사람은 100개, 민감한 사람은 400개 정도다.



맛봉오리가 남들보다 많은 민감자라고 해서 모든 맛에 민감하지는 않다. 쓴맛에만 유독 예민하다. 쓴맛은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미국 언론인 존 매퀘이드는 '미각의 비밀(Tasty)'에서 "쓴맛은 몸에 독소가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한 생물학적 경보 시스템으로 시작됐다"고 말한다. 식물은 감염성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거나 다른 동·식물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독소를 사용하는 호신책을 발전시켰다. 이 독이 바로 쓴맛이다.

연약한 유아가 생존하려면 독의 유무를 감지하는 능력이 성인보다 훨씬 더 절실하고,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미뢰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진화학자들은 설명한다. 꺼리는 음식이 많은 내 첫째 아들이 오히려 민감한 미각의 소유자이고,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 둘째는 미뢰가 상대적으로 적은 둔감자일 수 있는 것이다. 쓴맛에 민감할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유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쓴맛에 둔감한 것도 장점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쓴맛에 둔감한 유전자 형질은 모두 사라지고, 민감한 이들만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여기서 미국 음식 작가 마이클 폴란이 말한 '잡식동물의 딜레마'가 등장한다.

 

존 매퀘이드, 미각의 비밀                                       마이클 폴란, 행복한 밥상


동물은 대부분 편식한다. 육식동물은 고기만, 채식동물은 식물만을 먹는다. 잡식동물은 동식물을 가리지 않는다. 잡식동물 중에서도 인간은 유난하다. 인간처럼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는 동물은 없다. 다른 잡식동물은 제한적 범위의 잡식을 한다. 인간은 독이 있는 식물조차 그 독을 없애거나 중화하는 방법을 찾아내 먹고야 만다. 인간은 이 극단적인 잡식 성향 때문에 새로운 식품과 마주했을 때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다른 동물보다 훨씬 자주 고민하게 된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먹느냐 마느냐,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다. 새로운 음식을 섭취하기로 선택할 경우, 미처 알지 못했던 독성에 의해 병에 걸리거나 죽을 위험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식량원을 확보함으로써 기존의 식량이 사라지거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생존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외면하면 병이나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기존 식량이 사라지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굶어 죽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새로운 음식을 먹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잡식동물의 딜레마다.

매퀘이드는 말한다. "인류가 지구 곳곳에 정착해 살아가면서 쓴맛에 민감한 사람들은 독소를 탐지함으로써 집단이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었을 수 있다. 반면에 쓴맛에 둔감한 사람들은 새로운 먹을거리를 더 많이 맛봄으로써 잠재력 있는 먹을거리를 발견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입 짧고 새로운 음식에 소극 적인 내 큰아들은 예민한 미각으로 인류 생존에 도움을 준 인류를 대표하며, 무엇이건 적극적으로 집어 먹는 둘째 아들은 둔감한 미각으로 먹을거리의 폭을 넓혀준 나머지 인류를 대표하는 걸까. 잡식동물의 딜레마가 우리 집 식탁에 펼쳐져 있다. 다가오는 어린이날 밥상이 기대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26/20170426037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