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기자 김명진 기자
입력 2017.05.04 03:02
[해도해도 너무한 '님비'] [中] 서울 곳곳 '우리동네에 짓지마'
- 학생 주거비 부담 낮춰주자는데…
주민들 "술·담배하는 학생 오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줘서 안돼"
대학측 "제자식 일이어도 그럴까"
- 교육시설로 님비 확산
용산구, 근린공원에 어린이집 추진… 일부서 "공원이용 불편해져" 반대
강서구 장애인학교 신설 계획에 지역주민 "병원 지어달라" 요구
지방 출신으로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강모(27)씨는 학교 근처의 월세 40만원짜리 자취방에 살고 있다. 월 20만원짜리 학교 기숙사가 있지만, 수용 인원이 적어 매년 추첨에서 떨어졌다. 그는 생활비와 학비 마련을 위해 카페·도서관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느라 휴학을 자주 했다.
강씨는 "20만원 더 벌려면 시간당 8000원 주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 달에 25시간 더 해야 한다"며 "사정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주거비 문제는 결국 공부할 시간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은 강씨만의 일이 아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당이 높은 공사장 노동을 하는 대학생도 많다. 현재 서울 지역에서 기숙사가 있는 대학의 학생 수용률은 14.8%에 그치고 있다. 각 대학과 공공기관 등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숙사 건립에 나섰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한양대(1980명 수용)·고려대(1100명)·한국장학재단(1000명)·한국사학진흥재단(750명)·총신대(460명)가 추진하는 기숙사 건립이 주민 반대에 부딪혀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일 한국사학진흥재단의 행복기숙사 부지로 정해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는 '다른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밀려온 기숙사, 성북구청은 각성하라'는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이 기숙사는 올해 초 구청으로부터 설립 허가를 받았지만, 주민 반대로 착공조차 못 한 상태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결성한 '행복기숙사 건립 반대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대학생들 애정 행각이나 술·담배를 하는 걸 보면 좋지 않다"며 "기숙사는 절대 안 되고 대신 아이들의 체험학습장을 지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성동구 응봉동에 건립 예정인 한국장학재단 기숙사 인근 주민들도 '기숙사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1000여명의 기숙사 학생 중 일부 불량하거나 방황하는 몰지각한 학생들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지난 1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돈암초등학교 근처에 행복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태경 기자
기숙사를 지으려는 단체와 대학생들은 "반대하는 주민들이 너무 야속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 관계자는 "풍기문란은 지나친 억측이다. 2014년부터 서울 홍제동에 연합기숙사를 지어 운영했지만 그런 민원이 접수된 적은 없다"고 했다. 일당 7만원짜리 공사장 노동을 하는 부산 출신 대학생 김모(26)씨는 "대학생이 잠재적 범죄자도 아닌데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보면 '자기 자식 일이어도 저럴까' 싶다"고 말했다.
화장장이나 쓰레기소각장 같은 '기피 시설' 반대에서 시작된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이 기숙사와 어린이집 같은 '교육 시설'까지 번지고 있다. 서울 용산구는 작년 11월 한남동 응봉근린공원 안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짓겠다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은 "어린이집 때문에 공원 이용이 불편해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용산구는 어린이집이 부족하기 때문에 동네 어린이 500여명이 다른 지역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로 유아 자녀가 없는 중장년층이 어린이집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김윤태 교수
장애인 특수학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서울시는 2002년 종로구에 경운학교를 설립한 것을 마지막으로 15년간 특수학교를 한 곳도 짓지 못했다. 특수학교를 신설하려던 강서구에선 주민들이 "이미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있는데 왜 또 짓느
냐" "대신 그 자리에 병원을 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강서구는 특수학교 정원이 다 차서 장애학생들이 다른 지역 특수학교에 다니거나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숙사와 어린이집까지 님비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연대감'이나 '공동체 의식'이 굉장히 약해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4/20170504001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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