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소설가
입력 2017.01.02 03:02
[2017 신년특집] 2017 丁酉年, 닭을 말하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 중 자주 읽는 것은 역시 독서에 관한 글이다. 책을 대할 때는 하품하거나 기지개를 켜지 말 것이며 책을 베거나 그릇을 덮지도 말고 부모가 심부름시킬 때는 책 읽는다는 핑계로 거절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뜨끔하기도 하고 피식 웃음이 나는 대목이 있다. 그러곤 이런 말이 이어진다. "첫닭이 울면 일어나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전날 읽었던 내용과 의미를 되새겨보라는. 그 부분에서는 고개를 더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떤 깨달음 때문이 아니라 아, 인간적으로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하는 짐작 때문에. 첫닭이라니!
60갑자의 34번째 해, 정유년이 시작되었다. 붉은빛이나 불의 기운을 뜻한다는 정(丁)과 닭을 의미하는 유(酉). 또 한 번 닭띠 해가 돌아오는 모양이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올해 이후 정유년이 돌아오는 때는 정확히 60년 후인 2077년이며 그 이전의 정유년은 1957년이었다는 글들을 찾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져버렸다. 어떤 사람에게는 두 번 올 수도 있을 '붉은 닭'의 해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생에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르니까. 나처럼 1960년대 말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1957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해도 2077년엔 세상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닭이란 무엇인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꿩과의 새. 머리에 붉은 볏이 있고 날개는 퇴화하여 잘 날지 못하며 다리는 튼튼하다.' 국어사전에서 '닭'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한국문화상징사전'에서 강조한 것은 닭이 "울음으로 새벽을 알리는, 도래를 예고하는 존재"라는 점. 새벽이 되면 태양이 뜨고 빛이 생기는 게 하늘의 이치, 그래서 닭은 "태양의 새." 보르헤스가 쓴 '상상 동물 이야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하늘나라에는 황금 깃털을 가진 닭이 있는데 하루에 세 번씩 노래한다고 한다. 그 첫 번째 노래는 태양이 바닷가에서 아침 목욕을 할 때인데 노래 목적은 바로 잠든 인간을 깨우는 것. '여명의 새'라고 들어보셨는지. 즉 '새벽을 여는 새'. 그 우렁찬 소리 덕에 선조들은 닭을 서조(瑞鳥), 상서로운 새로 여겼다. 혼례상에 청홍 보자기로 닭을 싸서 올려놓은 것도, 귀한 손님에게 닭 요리를 내놓은 것도 모두 닭이 길상의 상징이라고 여겨서이겠지. 농담이지만 포도주를 고를 때도 망설여지게 된다면 수탉 라벨이 붙어 있는 것을 선택하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닭이 현실적으로는 근래 하루에도 몇 만 마리씩 땅에 묻히고 있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연암 박지원, 보르헤스, 상상 동물 이야기
닭. 그 강단 있어 보이는 발과 발톱으로 홰를 꽉 움켜쥔 채 흡사 관을 쓴 듯한 볏을 부르르 흔들곤 새벽이 오면 먼 데를 보며 듣는 이가 있는 말든 제시간에 꼬끼오! 울어 젖히는 일상적 습관과 기세. 비록 잘 날지 못하지만 다리는 튼튼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어쩌면 단 한 번만 맞게 될지도 모를 붉은 닭의 해. 지금 흘려보내고 있는 이 삶과 하루를 맹렬하고도 유연한 자세로 움켜쥐어 보고 싶다. 그러는 매일매일, 첫닭이 울면 무릎을 꿇고 어제 일을 돌아보며 반성도 해보리라. 그건 정말 어렵지만 인간적인 일이니까.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가족을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옳지 못한 일을 저질러 놓고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놓기' 해서도, 노력할 수 있는 일에 그러지 못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보내서는 안 될 것 같다. 어쨌든 올해는 '정유년', 닭처럼 총총총 활달하게 시작하고 싶은 해이니까 말이다.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인 올해를 붉은 닭의 해로 부르는 이유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차례로 된 십간(十干) 중 하나인 정(丁)이 오행사상에서 붉은색을 뜻하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열두 지지(地支) 중 하나인 유(酉)가 닭을 뜻하기 때문이다. 육십갑자에 따라 6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02/20170102000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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