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 뉴욕 FIT 교수·디자인
입력 2016.12.27 03:11
'사운드 오브 뮤직' 주인공 가족, 美 망명 후 정착한 아름다운 땅
가족 동반 여행 최적지로 꼽히고 프로스트가 숲길 산책하며 쓴
'가지 않은 길'과 그가 머물던 호텔의 비밀 서랍으로도 유명
우리에게 카레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는 '버몬트(Vermont)'는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역에 있는 주(州)다. 그린 마운틴(Green Mountain)과 섐플레인 호수(Lake Champlain) 등 아름다운 명소가 많아 캠핑과 스키 장소로 인기가 높다.
그린 마운틴, 섐플레인 호수
미국 대부분의 주 이름이 원주민인 인디언 용어나 영국 지명에서 따온 것과 달리 '푸른 산'을 뜻하는 프랑스어 '레 베르 몽(les Verts Monts)'에서 유래한 점이 특이하다. 사실 이곳은 1763년 '7년 전쟁' 직후 프랑스가 영국에 양도한 땅이다. 과거 프랑스령이었던 역사와 현재도 프랑스 문화권인 캐나다의 퀘벡주와 접해 있다는 이유로 음식 수준이 매우 높다. 특히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메이플 시럽과 어울리는 팬케이크는 미국 최고다. 큰 산맥과 넓은 목초지 덕에 낙농업 또한 발달했다. 낙농 제품으로 가장 유명한 상품은 아이스크림으로, 이곳에 '벤 앤드 제리'의 본사가 있다. '체리 가르시아'나 '초콜릿 브라우니' 같은 전설적인 맛을 히트시킨 미국 3대 아이스크림 회사다.
벤 앤드 제리, 체리 가르시아, 초콜릿 브라우니
버몬트주가 지닌 관광 상품 중 하나는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실제 주인공인 본 트랩 가족의 스토리다. 나치의 오스트리아 점령 후 이 가족은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본 트랩 가족 합창단'을 구성해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던 중 고향인 오스트리아와 유사한 버몬트의 지형을 보고 1940년 이곳에 정착했다. 스토(Stowe) 마을 산속에 오두막(Trapp Family Lodge)을 짓고 투숙객을 받으며 뮤직 캠프를 열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이곳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는데 내부 곳곳에서 본 트랩 가족의 역사적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본 트랩 가족(영화/실제)
이러한 콘텐츠로 보면 버몬트는 확실히 가족 여행의 최적지로 느껴진다. 그렇지만 여기는 미국의 존경받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발자취가 깊이 새겨진 대지이기도 하다. 현실적 관점의 철학적 묘사가 탁월했던 프로스트는 이곳의 신비롭도록 온화한 땅과 시골스러움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65세가 되던 1939년 버몬트로 이주하여 죽을 때까지 20여년을 여기서 살았다. 립턴 지역에 오두막을 짓고 사과나무를 기르기 위해서 농장도 샀다. 땅과 호흡하며 생활하던 농부였기에 그의 시는 항상 주변의 경관과 밀착되어 있다. 인근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 말고는 보통 시골에서 계절의 변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영국에 살던 시절 시인이자 친구인 에드워드 토머스와 산책을 즐겼던 나날들을 그리워하여 이곳에서도 숲속을 자주 찾곤 하였다. 나뭇잎 사이로 투영되는 햇빛을 보고 오솔길의 구부러진 곡선을 응시하며 숲이 전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시가 바로 그 유명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중략)…/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숲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고."
학창 시절 가장 대표적인 영시로 기억되는 이 문장들. 많은 친구가 이 시를 읽고 감동을 받고 운명적인 삶의 문제를 생각했다. 우리는 살면서 선택을 고민해왔다. 한 가지의 길을 택하면서 다른 길을 포기해야 했으므로 종종 망설임과 회한이 따랐다. 아쉬움과 담담함으로 인생의 순간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기에 이 시의 문구는 강렬했다. 그래서 두고두고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웨이버리 인(Waybury Inn)’ 호텔방 투숙객들이 프로스트의 시를 생각하며 써 놓고 간 편지들. /박진배 교수
프로스트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행의 백미는 '웨이버리 인(Waybury Inn)'이라는 작은 시골 호텔이다. 1810년 지어져 200년 이상 호텔로 운영되고 있는 오래된 목조 건물로 1983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호텔이 유명해진 것은 그가 종종 머물며 시를 썼던 '9호실' 때문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스위트'라고 명명되어 있고 현재도 일반인 투숙이 가능하다. 1987년 투숙한 어느 부부는 방에 놓인 앤티크 책상에서 우연히 비밀 서랍을 발견하고 한 장의 편지를 남겨 두었다. 그 이후 이 방 투숙객들이 프로스트의 시를 생각하며 편지를 써놓는 전통이 생겼다. 서랍 안에 편지 수백 통이 보관되어 있다. 손님들은 방에 비치된 프로스트의 시집을 읽고 또 다른 투숙객이 남긴 편지를 읽는다. 잠시지만 모든 걸 멈추고 인생을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여행 중에 이렇게 그리움을 느끼는 것보다 더 멋진 순간이 있는가? 생각하게 하는 여행보다 더 좋은 여행이 있는가? 버몬트는 문학을 이야기하는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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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노란 숲에 두길이 갈라 졌네요,
나는 아쉽게 둘다 갈수는 없고
나는 한 나그네라, 오래 서서는
가능한 만큼 멀리 내다 보았죠.
그 길이 덤불속에 꺾인 데까지;
그뒤 그만큼 좋은 딴델 택했죠,
그럴만한 더나은 주장을 갖고,
그곳이 풀덮이고 자취 드문탓.
그길을 지나드니 마찬 가지로
그길도 거의같이 닳아 졌다만,
또 두길다 그아침 같게 뻗기를
낙엽 밟은 자국도 하나 없었죠 .
오, 훗날을 위해 첫길은 남겼죠!
길에 길 이어짐을 아는 탓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 하면서.
한숨쉬며 이 얘길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훗날에 어딘가에서;
숲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나는…
사람이 덜간 길을 택하였다고,
실로 그탓에 모두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눈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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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Not Taken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u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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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번역 원본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피천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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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6/20161226026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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