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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가슴으로 읽는 시] 옛일

문태준 시인

입력 2016.09.12 03:09

 

 



옛일
한때 나는, 내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가 쓸어버린 초가을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다
박성우(1971~ )


우체국을 하나 지어서 하루하루의 기쁘고 설레는 소식을 누군가에게 부치고 싶어 하는 시인이 여기 있다. 시인은 강마을에 살고 있다. 시인은 강가의 안개, 초가을 풋별 냄새, 싸락눈 내리는 겨울밤을 편지 봉투에 담아 누군가에게 보내고자 한다.

요즘엔 잘 여문 낱낱의 밤알, 초가을 귀뚜 라미 울음소리, 멀리까지 나 있는 길을 바라보는 키 큰 미루나무의 기다림 같은 것을 봉투에 담아 부칠 수 있겠다. 한가위를 앞두고 점차 커지고 환해지는 달빛과 달빛이 눈부시게 모인 가을밤 고향집 마당과 낟알이 굵은 대추도 한 됫박 갓 따서 보낼 수 있겠다. 이러한 편지라면 받는 사람의 가슴속에 코스모스처럼 피어나겠다.



박성우 시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1/20160911017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