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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남자 태영호

[아무튼, 주말] 귤은 이미 북한에서 덜 귀해져… 다음에 北에 보낼 땐 대추가 어떨까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8.11.24 03:00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제주산 귤 200t을 보냈다. 김 위원장이 이 사실을 북한 주민에게 알리면서 북한 주민들도 제주산 귤이 온 걸 알게 됐다. 이번에 간 제주산 귤이 한 박스에 10㎏씩 포장돼 있다고 한다. 북측이 평양 시민과 청소년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으니, 평양의 한 세대당 1㎏씩 공급한다고 치면 20만 세대는 귤 맛을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평양시 중심부 주민은 꽤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평양에는 약 50만 세대가 산다.



북에 있을 때 나도 제주 귤을 먹은 적이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에서 보내준 귤을 인민반(한국의 동 아래 통과 비슷한 주민 거주 단위)에서 세대당 나눠 줘 먹은 생각이 난다. 그때 평양 사람들은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귤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전까지는 중국 남방이나 일본 남부 섬들에서만 생산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장마당이 번창하기 전에는 매우 귀한 과일이었다. 내 경우엔 인민학교(북한에서 초등학교를 의미)에 가기 전 1970년대 초반까지는 구경도 못했다.

귤을 처음으로 북한에 퍼뜨린 사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김정일은 후계자가 된 후 매년 김일성 생일(4월 15일)자기 생일(2월 16일)에 일본 조총련을 통해 일본 귤을 수입해 간부들에게 나눠 줬다. 김정일이 주는 귤 박스엔 붉은색으로 쓴 '선물'이라는 글씨가 붙었다. 명절 전날이면 자동차에 실어 간부들 집으로 귤 박스를 날랐다. 귤 박스 가득 실은 자동차가 길거리를 지나갈 때면 사람들은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이때부터 북한에선 명절 때 김정일로부터 귤 박스를 받는지가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됐다. 귤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귤 박스를 선물로 받은 간부들은 직장으로 일부 가져가 동료와 나눠 먹었다. 친척 집에도 돌렸다.

내가 처음 귤을 본 건 아홉 살 때였다. 당시 인민학교 교사였던 어머니가 간부집 자녀들이 가져다준 귤 몇 알을 저녁에 집에 가지고 와 우리 형제에게 나눠주셨다. 찬 바람 부는 겨울에 찬 귤이 입에 쏙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에 이런 맛있는 과일도 있구나 싶었다. 워낙 귀하다 보니 껍질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방 안에 고이 모아뒀다. 며칠 동안 향긋한 귤 냄새가 집 안에 가득해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귤 껍질을 말렸다가 소주병에 넣어 두곤 귤 향을 음미하며 아껴 드셨다.

이렇게 귀하던 귤이 갑자기 늘어난 계기가 있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장마당이 늘고 중국으로부터 밀수가 늘어나면서 중국 귤이 북한으로 흘러들어왔다. 구경하기도 어렵던 귤이 돈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됐다. 힘 있는 직장에서는 직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명절이 되면 중국에서 귤을 수입해 직원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명절에 직장에서 나누어 준 귤 박스 정도는 가지고 집에 들어가야 자녀들은 부모가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좋아한다.

명절 즈음 북한 무역회사들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귤을 중국에서 사 들이니 중국 회사들은 자연히 귤 가격을 올린다. 그래도 북한 회사들은 돈을 더 주고서라도 귤을 수입한다. 회사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거에도, 지금도 귤은 북에서 지위를 평가하는 잣대 역할을 한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귤이 한국에서는 넘쳐난다. 마트에도, 시장에도 수북하다. 많이 먹다 보니 이젠 좀 질릴 정도다. 귤 대신 눈에 들어오는 열매가 있다. 바로 대추다. 북에도 대추는 있지만 한국 대추처럼 크지는 않다. 한입 베 물어보니 달착지근한 게 입맛에 딱 맞는다. 북한 주민들이 신기해하며 좋아할 과실인 것 같다. 혹 또 기회가 있다면 다음엔 대추를 보내면 어떨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23/20181123017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