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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자작나무 숲] 사적인 삶에 대한 예의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2.02.17 03:00

일러스트=이철원

자본주의 혐오해 소련 찾아간 독일 진보 지식인 발터 베냐민
사랑에 빠졌지만 개인성 말살된 사회에 둘만의 시공간은 없어
부르주아 사회도 사적인 삶을 위협하고 규제

이야기는 100년 전 모스크바로 거슬러 오른다. 10월 혁명이 성공하자 서구의 진보 지식인들은 앞다퉈 소련을 찾았다. 그중 한 명이 독일의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이다. 상류계급 출신이지만 자본주의를 혐오하고, 마르크스 유물론을 추종하면서도 공산당과 거리를 두었던 이 유대계 저술가에게는 ‘좌파 아웃사이더’ 혹은 ‘탈영한 부르주아’ 칭호가 따라다닌다. 그는 1926년에서 1927년으로 이어지는 겨울 두 달을 모스크바에서 지냈다. 라트비아 출신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맹렬 공산당원을 사랑했는데, 요양소에 입원 중인 그녀에겐 또 다른 남자(베냐민의 친구인)와 아이가 있었다.

베를린에서 온, 게다가 사랑에 허기진 서른네 살 남자에게 모스크바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레닌이 신경제정책(NEP)으로 개인의 시장경제 활동을 허용하자 물가가 치솟고 신흥 부르주아 계층이 나타났다. 노점상은 기독교 성화와 레닌의 초상화를 같이 팔았다. 구걸하는 사람은 많은데 적선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난에 찌들어 신음하는 이 도시에 병난 입속의 치석처럼 사치가 쌓여간다’고 베냐민은 ‘모스크바 일기’에 적고 있다.

과도기의 대도시는 피곤하고 혼란스럽다. 베냐민은 연인의 숙소를 오가고, 그녀에게 선물할 옷감과 과자와 케이크를 사고, 장난감(!)을 수집하고, 알아듣지 못할 연극·영화를 구경한다. 박물관을 드나들며, 집필과 번역도 이어간다. 언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 영하 32.5도의 추위를 뚫고 다니느라 기진맥진하기 일쑤다. 그러나 베냐민을 지치게 한 진짜 이유는 ‘그토록 오랜 시선과 긴 키스를 허락했던 여자’와 단둘의 시간을 갖지 못한 좌절감 아니었을까 싶다. 남자는 호텔, 여자는 요양소에서 각각 지내는데, 거기엔 거의 항상 룸메이트와 방문객이 있다. 둘은 노상 다툰다. 그렇다. 사적 시공간의 결핍은 짜증 나는 일이다.

‘볼셰비즘은 사적인 삶을 폐지했다.’ 베냐민이 한 말이다. 소련의 대도시에서는 대부분 공동주택(코뮤날카), 기숙사, 막사 같은 공유 주거 생활을 했다. 파리의 저녁이 ‘사적인 것의 광채’로 빛날 때, 모스크바는 공동주택 방방의 불빛으로 특별한 야경 효과를 만들어냈다. 국가라는 큰 가족의 구성원인 소비에트 시민은 안락한 집 대신 공공 사무실과 회관과 거리에서 사적 용무를 해결했다. 실제로 스탈린 시대 예술 작품에는 집 안의 사적이고 은밀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적 시공간 폐지는 개인성 문제와 맞닿아 있다. 레닌·스탈린 시대에 자리 잡은 집단 공동체 문화는 전체의 이익과 질서에 종속된 소비에트형 인간을 완성했다.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하는 국가에서 코뮤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독립성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의미임을 베냐민은 잘 알았다. 시민들은 사적 의견을 공적으로 개진하지 않는다는 점도 꿰뚫어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틀렸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다만 사회주의 정치 실험의 대가가 그렇다는 사실을 냉철히 직시했다.

소련을 방문했던 좌파 지식인 중에는 이후 전향한 사람이 꽤 있다. 그들이 비판한 소련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개인성 말살이다. 그러나 발터 베냐민은 전향, 비전향으로 특정하기가 어렵다. 그러기에는 그의 지적 프라이버시가 너무 공고하다. 모스크바의 연인이 공산당에 가입하라고 종용해도 그는 입당하지 않았다. 사상적으로 급진화할수록 조직된 이념이나 운동에는 선을 그었다. 한편, 부르주아에게도 끝내 투항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 정신이 사적인 삶을 공식적으로 추방했다면, 부르주아 정신은 비공식적으로 그것을 위협하고 규제해왔다. 복제되는 욕망, 소심한 순응주의, 취향과 견해의 평준화, 염탐과 은닉의 줄다리기 같은 부르주아 사회 면면에서 사적인 삶을 향한 예의는 보이지 않는다. 베냐민에 따르면, 프티부르주아의 획일화된 공간에서는 어떤 인간적인 것도 자라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베냐민의 행보에서 나는 한 외골수 자유 시민의 고집과 고독을 본다.

연인과 작별한 후 큰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울며 떠나가는 장면으로 ‘모스크바 일기’는 끝난다. 가방에는 정신의 분신인 원고 외에도 각종 장난감이 들어 있다. 혹한과 좌절에 맞서 두 달간 투쟁하듯 수집한 종이·나무 수공예품들이다. 대량생산품이 아니다.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제각각 고유성을 지녔으나 부서지기 쉬운 소우주들. 베냐민에게는 어쩌면 온전한 프라이버시의 상징체였을 그 작은 장난감들에 내 마음의 눈길이 간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02/17/Y2VT32L36VFGJC4GUR3C3YALL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