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변호사·글로벌 스탠다드 연구원 회장
입력 2022.09.02 03:00
특별한 사고도 없었는데 임기 시작 몇 달 만에 대통령 지지도가 유례없이 심하게 추락했다. 왜 그랬을까? 다른 대통령들의 집권 초기 모습에서 그 단서를 한 번 찾아보자.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 그는 선거때 국민에게 ‘변화와 개혁’을 약속했다. 그리고는 취임하자마자 과감하게 실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 취임 한 달여 만에 전격적으로 장군 수십명을 한꺼번에 예편시켰다.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한 것이다. 이어 자신의 전 재산을 공개하면서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제’ 전면 실시를 발표했다. 이렇게 시작된 ‘변화와 개혁’ 드라이브는 급기야 사상 최대 경제 개혁이라고 일컬어지는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로 그 절정에 달했다. 모두 취임 6~7개월여만에 이루어진 큰 개혁이었다. 국민은 환호했고 지지도는 80%를 오르내렸다. 한마디로 김 대통령은 ‘변화와 개혁’이라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1981년 취임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을 보자. 그는 선거운동 때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저 정부를 떨쳐 버려라’라는 구호를 내 걸었다. 대대적으로 규제 개혁을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취임 후 레이건의 규제 개혁 움직임에 다양한 이익집단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노조였다. 노조는 당시 ‘대체고용 금지’ 라는 불공정한 규제의 대표적 수혜자였다. 그 규제는 한마디로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을 때 회사가 조업을 지속하기 위해 임시 근로자를 외부로부터 채용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규제였다. 참고로 지금 우리 노동법이 그런 식이다. 레이건이 개혁을 강행할 조짐을 보이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항공 관제사 노조가 총 파업에 돌입했다. 하루아침에 전국의 모든 공항이 마비됐다. 레이건이 곧 손을 들 것이라 모두가 예상했다. 그러나 레이건은 그러지 않았다. 긴급 명령으로 전국의 은퇴자, 예비역 군인, 수련생까지 총동원해 관제가 계속되도록 했다. 대통령의 단호한 결의와 국민의 열렬한 호응을 본 노조가 결국 항복했다.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 역사적 사건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그후 10년 만에 파업 건수는 6분의 1로, 파업 참가 노동자 수는 10분의 1로 줄었다. 이 개혁이 그후 미국 경제가 장기 호황을 지속하는 핵심 기반이 되었다는데 전문가들의 이의가 없다. 당시 레이건 지지도 역시 70% 를 오르내렸다.
국민은 대통령이 취임 초 실행하는 개혁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특히 선거 때 약속했던 그 공약, 그것을 실현하는 모습은 신뢰를 주고 그것이 지지도를 높혀 주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 지지도는 반드시 추락한다.
이 원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 번 적용해 보자. 윤 대통령은 선거 때 국민에게 어떤 개혁을 약속했었나? ‘공정과 상식이 넘치는 나라’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난 100여 일 윤 대통령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뛰는 모습을 보였던가? ‘청와대 이전’ 같은 단순한 행정 조치를 넘어 기득권의 반발과 저항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이루어야 하는 ‘개혁’을 향한 시도가 보였던가? 불행히도 기억에 없다. 한마디로 지난 100여일 윤 대통령에게 ‘행정’은 있었지만, 불행히도 통치는 없었다. ‘개혁’은 통치 행위의 핵심이다.
설상 가상으로 지금 여당에는 ‘싸움판’이 한창이다. 윤 대통령이 그것을 피할 방법은 없었을까?. 이런 시나리오는 불가능했을까? 윤 대통령이 이준석 대표와 마음을 활짝 열고 밤 늦게까지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공정과 상식이 넘치는 나라’라는 꿈을 같이 진심으로 공유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같이 열심히 한 번 뛰어 보자고 약속하는 것이다. 과거의 대통령은 현찰과 이권으로 당을 몰고갔다. 그것이 불가능한 지금, 대통령의 여당과의 공감 능력이 그것을 대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많은 국민은 윤 대통령이 여당을 마치 사돈 댁 같이 ‘불가근 불가원’으로 대하는 모습을 주고 있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대통령과 여당은 수레의 두 바퀴다. 같이 가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행정가가 아니라 정치가이다. 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여당도 이제 정말 제대로 뛰어야 한다. 전체가 ‘공정과 상식’에 대해 이론 무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는 지구당으로 뛰어나가야 한다. 국민들에게 ‘공정과 상식’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줄 건지를 보여주고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통과 가능성에 관계없이 법안들을 만들어 대거 국회로 보내야 한다. 야당이 모조리 부결시키더라도 관계 없다. 국민들은 다 기억하고 다음 총선에서 충분히 보상해 줄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에 와 닿는 다양한 개혁 과제들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공정과 상식을 위한 국민 회의’ 같은 것을 만들어 정치·경제·사법·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국민의 아이디어와 열정을 모아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런 활동들이 축 처져 있는 이 나라 정치, 마치 정권 말기 같이 늘어져 있는 정치에 다시 ‘흥’과 ‘신’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 전혀 늦지 않았다. 아직 아주 초기이다. 얼마든지 고쳐나갈 수 있다. 케네디 대통령은 집권 몇 달 후 있었던 쿠바 침공의 대실패가 훗날 대통령으로서 큰 성공의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불의에 대항하여 단호히 저항했던 공직자 윤석열의 그 당당한 모습을 많은 국민들은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 아직 시작이다. 우리는 ‘완전 아마추어’에게 대권을 맡기는 세계 사에 유례가 없는 대단한 도박을 한 국민이다. 큰 도박에 성공하려면 도박자에게 큰 인내와 담대함이 필요하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09/02/OPYRZL7ENJCRBGM44NTIKJIK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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