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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2030 플라자] 좋아해서 괴롭히는 건 범죄다

서솔 유튜브 ‘하말넘많’ 운영자
입력 2022.10.13 03:00

/일러스트=이철원

영단어 ‘stalking’ 발음을 그대로 옮긴 ‘스토킹’의 사전적 정의는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고의로 쫓아다니면서 집요하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다. 그러나 한국말 ‘스토킹’은 영어가 외래어로 정착된 탓에 내포된 의미가 많이 희석된 것으로 보인다. 스토킹이 단순히 ‘좋아해서 쫓아다니는 것’ ‘헤어진 연인의 사랑 싸움’쯤으로 여겨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뉴스에 ‘스토킹’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자 범죄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직장 동료를 스토킹하며 살인 계획을 세우다 잡힌 20대 남성, 일주일간 200번 연락을 하며 전 여자 친구를 스토킹한 40대 남성, 그리고 얼마 전 모두를 경악에 빠뜨린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의 후속 기사까지. 사건은 전부 다르지만 공통점은 명확하다. 스토킹의 결말이 범죄로 끝난 사례라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신변 보호를 받던 스토킹 피해자가 재신고를 한 건수는 약 7000건에 달한다고 한다. 스토킹 가해자들의 78%가 접근 금지 조치로 대표되는 잠정 조치를 무시했다는 취재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건조하게 나열된 수치가 아닌, 주변에서 실제로 스토킹을 당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참고 견디다 보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자신을 다독였을 피해자의 홀로 버티기는 고난의 연속이다. 참다 못해 고소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도 소송 비용과 보복 걱정으로 쉽지 않은 길이라고 한다.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로서, 이런 사건은 그저 남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1년 전 일을 하던 공간에 팬임을 자처하며 찾아왔던 사람이 난동을 부린 후, 일상생활이 힘들었던 적이 있다.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내게 지속적인 폭력이 찾아올까 걱정돼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시 나를 찾아오면 어떡하지?’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지레 겁을 먹은 나날이었다. 스토킹을 당한다는 건 일상이 공포로 가득 찬다는 뜻이다. 그것은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한 휴대폰, 나의 직장, 내 집, 나의 친구, 내 가족 등 내 모든 연결 고리가 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 가장 안전해야 할 집이 위협받는 순간 끝없는 이사를 감행해야 하는 심각한 사례들도 있다. 여성 인터넷 방송인들이 신원 노출에 대한 스토킹 범죄 때문에 이사를 한 경우가 왕왕 있다. 첩첩산중으로 요즘엔 SNS를 통한 사이버 스토킹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원치 않는 연락과 게시글을 업로드하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경우다.

피해자는 물리적인 위협이 가해지지 않아도 정신적 폭력을 당할 수 있다. 그 사이 피의자는 단순히 ‘상대방을 좋아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좋아해서 글을 올리는 것’이기에 처벌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역시 상대방을 공포심에 몰아넣는 위협적인 행동이라면 ‘사이버 스토킹’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여기서 ‘호감의 표시’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 보인다. 아주 어렸을 때, 타인의 괴롭힘에 대한 설명으로 ‘좋아해서 괴롭히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이 얼마나 섬뜩한 말인가. 좋아해서 괴롭히는 건 그저 타인을 괴롭게 할 뿐이다. 더 이상 나를 만나주지 않는 상대방을 동의 없이 쫓아다니는 것은 위협이고 중범죄다. 우리는 이것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스토킹의 해법이 경찰에 신고한 뒤 연락처를 바꾸고 도망가라는 식의 피해자 중심으로 마련되어서는 범죄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사회적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고, 스토킹 처벌법으로 대표되는 제도를 보완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10/13/4KY33TXKRJDWPFNLDLI2W3HQ7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