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러스트=이철원

♥[2030 플라자] 엄마의 허리

천현우 얼룩소(Alookso) 에디터
입력 2022.11.01 03:00

그림=이철원

8년 전 사기를 당했다. 모아 둔 돈을 몽땅 날리고 8000만원의 빚이 생겼다. 살기 위해 주야 교대 공장을 다니면서 주말에 막노동까지 뛰었다. 그래 봐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300만원 안팎. 처음으로 빚을 상환하고 월세까지 냈을 때 수중에 남은 돈은 5만원이었다. 그나마 장마 탓에 막노동 못 간 달은 돈을 빌리러 다녀야 했다. 갚을 날짜조차 기약할 수 없었으니 사실상 구걸하러 다닌 셈이다. 한 달 내내 하루도 안 쉬고 일하니 자연히 사람들과 멀어졌다. 일주일 내내 통화 목록엔 엄마 이름뿐. 내 곁에 남은 건 학교 친구도 아니요, 직장 동료도 아닌, 오로지 가족뿐이었다.

어느 날부터였던가. 엄마의 허리가 점차 굽어가는 걸 느꼈다. 퇴근길에 계단도 혼자 못 올라서 중턱서 앉아 가쁜 숨만 몰아쉬는 엄마를 보았다. 병원에 가보니 척추협착증이라고 하더라. 수술하면 금방 좋아질 걸 알지만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꼿꼿하게 서서 걷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가슴앓이만 했다. 제때 병원 못 가니 엄마의 몸 상태는 점차 나빠지기만 했다. 어깨도 잘 들지 못하고, 팔엔 커다란 혹이 생겼다. 왼쪽 어금니를 뽑은 탓에 오른쪽으로만 음식을 씹었다. 종종 밤에 아파서 앓는 소리를 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그 신음을 듣는 게 너무 괴로워서 제발 조용히 좀 하라고, 어차피 빚 갚느라 병원비도 없으니 못 고쳐준다고 신경질 냈다. 가난에 의지가 꺾이면 곧바로 불효자가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빚을 진다는 건 남들 다 달리고 있던 평지에서 떨어져 절벽 아래에서 시작한다는 뜻. 죽도록 기어올라 간신히 끝에 도달하면 남들은 이미 아득히 먼 앞을 달리고 있다. 한 해 한 해 통장에 찍힌 마이너스가 줄어들 때마다 친구들은 대기업 들어가거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채무 상환 과정에서 가장 두려운 건 이자나 독촉이 아니었다. 남들 잘 되는 소식 들을 때마다 가슴속에 솟구치는 불안이었다. 빚 다 갚으면 나이는 30대 중반일 텐데, 남은 거라곤 상해버린 몸뚱이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10년짜리 공장 경력뿐. 미래를 생각하면 늘 우울해져서 퇴근 후 술만 마셨다. 그때마다 엄마는 말없이 못난 아들 먹일 술안주를 만들어 상에 올려놓곤 했다.

이대로 계속 살 순 없었다. 하지만 당장 상황을 바꿀 순 없으니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무일푼으로 미래의 내게 남겨 줄 수 있는 유산은 두 가지.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을 지식과, 고된 육체노동을 견뎌낼 튼튼한 몸이었다. 평일 시간을 쪼개 달리기하고, 주말엔 방구석에 있고픈 몸을 이끌고 도서관으로 갔다. 공장에서 과장님 다리가 철판에 짓뭉개지는 모습을 본 후론 꾸준히 일기도 썼다. 이력서에 한 줄도 못 남길 그 습관들이 쌓이고 쌓이자 책까지 쓰게 됐다. 여러 운이 겹쳐 첫 작품임에도 꽤 팔렸다. 언제나 생활비만 간신히 남아있던 통장에 처음으로 여윳돈이 생겼다. 첫 인세로 할 일은 너무나 명확했다. 남은 빚을 일시 상환했다. 마침내 신용회복위원회와의 인연이 끝나는 순간 삶의 한 고비를 넘었음에 안도했다. 얼마 안 가 또 인세가 들어왔다.

얼마 후 집에 들렀다. 허리가 꼬부라진 엄마와 마주한 순간 인세의 사용처를 정했다. 그날 바로 엄마를 종합병원으로 데려갔다. 이참에 몸 아픈 곳 싹 수술하시라고 했다. 한사코 됐다고 하는 엄마를 보험 들어놔서 병원비 얼마 안 나온다며 안심시킨 채 MRI 기계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한 달 후 청구서가 떨어졌다. 비급여 항목이 많아 내야 할 돈만 400만원이 넘었다. 덕분에 통장이 도로 텅텅 비었지만 별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냥 원래부터 없었던 돈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10월 초에 다시 마산 고향집을 들렀다. 놀랍게도 엄마가 버스 정거장으로 마중 나와 있었다. “집에서 기다리지 그랬어”라고 말하니 “아들 빨리 보고 싶어 그랬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허리 쫙 편 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산복도로 언덕길을 올랐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웃음소리는 경쾌했다. 저 뒷모습을 보기 위해 지금껏 꾹꾹 버티며 살아왔구나, 몇 분쯤 걷자 괜스레 눈물이 났다. 아랫눈썹에 찔끔 맺힌 이슬은 좀처럼 멎지 않고 비가 되어 쏟아졌다. 엄마도 대뜸 길에 멈춰서서 울어 재끼는 아들의 마음을 안 걸까. 놀라는 대신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청춘을 몽땅 불사른 8년의 투쟁 끝에 비로소 우리 가족은 평범을 되찾았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11/01/R4ZSABCBYZDGZOVON4X2KUY47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