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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2030 플라자] “여자라예? 남자라예?”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입력 2022.10.27 03:00 | 수정 2022.10.27 03:00

일러스트=이철원

“여자라예? 남자라예?” 지난 추석, 고향 대구에서 택시를 탔다가 들은 말이었다. 택시 기사는 내가 엄마와 대화를 시작하자 본인이 남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입에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오니 놀라서 질문한 모양이었다. “맞혀보세요.” 나는 순순히 알려주지 않는다. 택시 기사는 황당하다는 듯 웃더니 신호가 바뀌고 차가 멈춰서자 아예 몸을 돌려 뒷좌석에 앉은 나를 요리조리 살폈다. 내 말의 의도는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그는 정말로 알아내고 싶은 듯 나를 훑어댔다. 나는 힌트를 주지 않기 위해 정면을 보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유지했다. 기사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남자지예!”라고 외쳤다. 나는 픽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난 여자다. 혹시 당신도 내 사진을 보고 긴가민가했나?) 택시 기사는 그러고도 확신할 수 없었는지 계속해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내게 물었고 옆에 있던 엄마가 참다못해 내 성별을 정정해 주었다. 엄마는 나를 ‘여자’라고 말했지만, 기사는 ‘아가씨’였냐며 크게 웃었다. 자연스럽게 예상되는 다음 레퍼토리.

“이쁜 아가씨가 왜 이러고 다니느냐.”

이 문장이 뭐가 문제냐 물으신다면, 나는 한순간에 타인에게 원치 않는 외모 평가를 당했다고 답하겠다. 여성에게 으레 칭찬인 듯 말하는 ‘예쁘다’는 말은 칭찬이 되기는커녕 외모 강박을 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은 굳이 예쁠 필요 없다. 게다가 나는 ‘아가씨’(사전에선 ‘시집갈 나이의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가씨를 사전적 의미로 쓴 것이 아니라고 해도 택시 기사가 나를 ‘존대’하려고 그리 불렀을 리는 만무하다. 어린 여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하대’에 가깝다. 그리고 ‘왜 그러고 다니느냐’. 그날 나의 차림은 검은색 티셔츠에 회색 카디건을 걸친 그냥 멀끔한 차림새였다.

“제가 왜요?” 기사는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아가씨면 화장도 곱게 하고 머리도 좀 이쁘게 기르고 다녀야지.” 그러니까 내가 머리도 ‘남자처럼’ 짧고 ‘아가씨처럼’ 곱게 화장하지도 않아서 도저히 여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잠자코 있자 기사는 내게 “시집갈 나이는 됐냐”고 다시 물었다. 몇 살이냐 묻는 것도, 시집 안 갈 거냐고 묻는 것도 아닌 ‘시집갈 나이’가 되었냐 묻는 것에 내 머리가 그제야 위험을 감지했다. 나는 여기서 절대 그렇다고 대답해서는 안 된다. 그럼 그다음에는 ‘남자들이 좋아할’ 차림, 그러니까 남성에게 선택받아 시집갈 수 있는 차림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들어야 할 테니까. 이럴 때는 그냥 “시집갔는데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대화는 끊어졌다.

머리 짧은 여자로 살다 보면 황당한 일을 참 많이 겪는다. 머리 짧은 친구들과 함께 택시를 탔을 때는 하도 캐물어 그냥 초등학교 다니는 애가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친구들과 다 같이 마트에서 장을 보면 “운동부 놀러 가냐”는 말 또한 많이 들었다. 대충 대꾸하다 보니 유도부, 태권도부, 씨름부 섭렵하지 않은 종목이 없다. 우리는 운동할 것처럼 몸이 좋지도 않다. 다들 종이 인간, 물주먹이다. 그저 머리 짧은 여자들이 모여 다니면 당연히 운동부겠거니 하는 시선을 받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내가 머리를 짧게 자르기 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이다. 도대체 택시를 타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머리 길이나 성별이 왜 그리 중요한가. 내 ‘남자 같은’ 차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굳이 친절하게 굴 이유는 없으니까. 누구나 저마다 이유가 있다. 남의 외모와 신상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자. 내가 이 사람의 신상에 대해 물을 자격이 있는가? 내가 그걸 알아서 어디에 써먹을 수나 있는 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노(No)’라면 그냥 마음속에만 간직하는 게 좋겠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10/27/JR6QVERHLVHHJGKHD5HN4GNB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