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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전성철의 글로벌 인사이트] 윤 대통령에게 도어스테핑보다 중요한 것

전성철글로벌 스탠다드 연구원 회장
입력 2022.12.02 03:00

일러스트=이철원

윤석열 대통령은 이 나라에 아주 유니크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진보가 문재인이라는 리더의 주도하에 ‘이념 집단’에서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이익 집단’으로 변질되면서 나라가 추락해 가는 것을 차단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적 공, 그리고 아직 허니문 기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통령 현재의 지지도는 적어도 50%는 넘는 것이 정상이다. 전혀 그렇지 못한 현 상황, 그 원인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정권의 대언론 전략의 패착에서 온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

대통령에게 주어진 업(業)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가 ‘행정’이고 둘째는 ‘통치’이다. 행정은 정부를 리드하는 업이고 ‘통치’는 국민을 리드하는 업이다. 국민을 리드한다는 것은 국민의 마음을 산다는 것이다. ‘행정’과 ‘통치’는 수레의 두 바퀴 같아 한쪽이 탈이 나면 전진이 어려워진다. 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저 낮은 지지도가 ‘통치’ 쪽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통치, 즉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사는 핵심 수단이 무엇인가? 바로 언론이다. 저조한 지금의 지지도는 한마디로 정권의 언론 전략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이를 인지하고 대언론 전략을 전면 재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 그 검토에 참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국 대통령의 대언론 전략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본다.

미국의 캘리포니아대학은 그동안 미국 전·현직 대통령 17명의 약 100년간에 걸친 대언론 관계에 대한 연구를 해 왔다. 대통령의 대언론 접촉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가 소위 ‘프레스 콘퍼런스’라 불리는 공식 기자회견이고 둘째는 소위 ‘익스체인지’라 불리는 개별 기자와의 간단한 일문일답이다.

당연히 공식 기자회견이 중심이다. 보통 백악관에서 수십 명 기자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이 공식 회견은 평균해 보면 약 2주에 한 번꼴이다. 한 번에 20분 내외로 진행된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이 회견은 사실 미국식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행사이다. 국민이 주인임을 실감케 한다.

기자들은 제한 없이 신랄하게 질문한다. 때로 비꼬기도 하고 적대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통령도 지지 않는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생각과 계획, 비전, 그리고 고뇌를 털어놓는다. 때로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시간은 나라의 주요 현안들이 표면화되는 시간이다. 다른 말로 대통령과 기자들이 함께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해 투명하게 질문·답변하는 시간이다. 항상 생중계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국민에게 보고하는 시간이다.

얼핏 보면 대통령이 까다로운 질문 때문에 고생만 잔뜩 하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행사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그 대통령이다. 국민에게 자신의 꿈, 계획, 애로들을 직접 호소하고 또 변명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가해졌던 공격들에 대해 시원하게 반박해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기 대문에 때로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기자회견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가장 생생한 상징이다.

이 공식 기자회견이 주식이라면, 소위 ‘익스체인지’라는 것은 일종의 간식이다. 기자들이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대통령에게 불쑥 질문을 던져 간단히 답을 얻는 기회이다. 한마디로, 단발성 회견이다. 이 익스체인지의 일종으로 비공식성이 좀 더 심한 것을 소위 ‘도어스테핑’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그에 대비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6~7개월간의 대언론 활동을 한번 살펴보자. 무엇보다 ‘도어스테핑’이라는 것을 대언론 관계의 주축으로 삼은 것은 이 정부가 최대의 악수를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기자가 던지는 중요한 국민적 관심 사항에 대통령이 예외 없이 1~2분 안에 ‘뚝딱’ 단칼로 처리해 버릴 수가 있는가? 대통령과의 대화는 퀴즈 대회가 아니다. 기자회견의 본래 목적은 외견상으로는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 주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본질은 이를 통해 대통령이 국민에게 설명하고 어필하는 자리이다. 그 국민적 관심사에 그렇게 간단히 캐주얼하게 뚝딱 대답을 던지고 표표히 사라져 버리는 대통령의 그 모습, 그것은 사실 미국 언론의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 코미디 수준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제대로 된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의 대언론 접촉 형식이 모조리 ‘익스체인지-도어스테핑’ 형식으로 진행된 예는 없다. 거대한 식당을 차려 놓고 메뉴는 디저트 한 종류만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그렇게 ‘자주’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큰 오판이었다. 고급 식당에서 디저트를 자주 준다고 그 결함이 보완이 되겠는가? 그 1~2분짜리 단답들이 어떻게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6~7개월이 지났는데도 대통령과 진정으로 공감하고 연대감을 느끼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렇게 무성의한 대통령 회견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코 야당이었다. 아무리 대통령에게 비난을 퍼부어도 그가 반박하는 시간은 1~2분을 넘지 않을 것을 아니 그들이 조심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더 안타까운 것은 윤대통령은 정식 기자회견을 잘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히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취임 후 했던 유일한 기자회견다웠던 기자회견, 바로 청와대 이전과 관련한 특별 기자회견은 내 생각에 큰 성공이었다. 단 10분 정도 만에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그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도어스테핑을 구태여 중단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손님에게는 디저트만이 아니라 정식 디너로 대접하는 것이 맞는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12/02/2RSPDQYN5JB2PEZATDQXQKMB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