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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2030 플라자] 내가 살 집은 어디인가

서솔 유튜브 ‘하말넘많’ 운영자
입력 2022.12.01 03:00

그림=이철원

부동산 시장 하락세라지만, ‘미혼 1인 가구 여성’에 여전히 가혹
청년들 바람은 ‘사람 살 만한 집 얻는 것’… 다양한 주택 정책 필요

“더 사실 건가요? 그만 사실 건가요?”

내년 초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과 부동산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들의 질문은 간단했다. 이사를 갈지 말지 빨리 결정하라는 것. 졸지에 계약 만료가 여섯 달이나 남은 시점부터 골머리를 앓았다. 집주인은 재계약을 원한다면 전세금 5%를 올릴 것이라는 말까지 전했다.

“며칠만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빨리 결정하라고 보채는 집주인을 뒤로한 채 2년마다 열어보는 부동산 앱을 다시 깔았다. 그 안에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 있었다. 내가 갈 만한 빌라의 시세는 2년 사이 몇 천만원부터 1억원 이상씩 올라 있었다. 전국적으로 집값이 하락하고 세입자 우위의 시장이 되었다는 말은 허상인 듯했다. 서울 지도를 하릴없이 늘렸다 줄였다 하며 허탈함을 느꼈다.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 여성’의 신분으로 30대에 접어든 뒤 마주한 부동산 시장은 생각보다 더 가혹했다. 올해 들어 아파트 시세가 떨어졌다고 한들, 이미 치솟아 있는 주택 가격에 ‘과연 내가 부동산 사다리를 부여잡을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가득 찼다. 아파트 시세를 확인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나는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들만의 리그였다. 신혼부부, 다자녀, 부양가족 가점. 나는 그 어떤 카테고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부유했다. 아파트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였다.

‘청포자(청약 포기자의 준말)’라는 말이 실감 났다. 매달 10만원씩 납입하는 청약 통장은 그저 뜬구름 같았다. 삶의 방향을 운에 기대고 싶지 않다는 신념으로 로또 한번을 사본 적이 없는데, 어림없는 청약 가점으로 ‘추첨제’에 운을 시험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설상가상, 청약에 당첨된다고 해도 높은 분양가와 대출 이자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어 청약은 도전조차 해 보지 못했다. 지금껏 나도 ‘청포자’ 중 한 명이었다.

그렇다면 그저 작은 집에 살면 되는 것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 1인 가구라고 해서 6평 원룸에 만족해야 할 이유는 없다. 주방과 거실, 그리고 방이 분리되지 않은 ‘원룸’이라는 형태는 그 안에 누가 살든 삶의 질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며 종국에는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몇 해 전부터 꾸준하게 제기되는 청년 고독사의 현장을 보면, 3평에서 5평 남짓 원룸이라고 한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수도권에 진입한 청년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나의 노동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는 집값이 올라가는 속도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층 대부분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 때문에 ‘청년 주거 빈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정책들이 존재하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다. 대부분의 제도가 신혼부부와 청년을 한데 묶어 놓아 오롯이 독신 청년을 위한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역세권 청년 주택은 비싼 보증금과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당첨을 포기하는 입주자들이 40%에 육박하기도 한다.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과 깡통 전세의 위험을 피하고자 공공주택의 문을 두드려 보려고 해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얼마 전에 발표된 ‘미혼 특공’으로 대표되는 청약 제도 개편이 청년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 아직은 의문스럽지만 기대해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기대는 단순히 청년들이 아파트를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집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적어도 사람이 살 만한 집에서 살기를 바라는 소망의 발현이다. 또한 살 만한 집을 얻을 방법이 청약이라는 제도 하나에 집결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기대를 안고, 나는 묵묵히 인상된 전세금을 마련해 이체할 예정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essay/2022/12/01/PWNDWIWQ2VCHDCAV33VXKMG3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