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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2030 플라자] 남미 K팝 팬덤 거점 칠레에서 벌어진 일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입력 2022.11.24 03:00

/일러스트=이철원

2022년, 바야흐로 코로나19로 야기된 전 세계적 봉쇄가 해제되면서 2년 동안 얼어 있었던 각종 국제적 교류 프로그램이 재개되고 있다. 특히 약진하는 것은 팬데믹 기간에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한층 키운 K팝이다. 프랑크푸르트, LA, 사우디아라비아 등 새롭게 열리는 해외 투어는 K팝의 기반을 다지고 새로이 확장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이달 12일 칠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뮤직뱅크 인 칠레’도 그런 행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KBS의 대표 음악 방송인 뮤직뱅크는 K팝이 국제적으로 확장된 2010년대 이래로 꾸준히 해외에서 특별 무대를 올리는 뮤직뱅크 월드 투어를 진행해왔다. 뮤직뱅크 월드 투어 역시 코로나19로 끊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고, 지구 반대편 칠레가 3년 만의 귀환을 알릴 장소로 선택되었다. 라틴아메리카가 이미 K팝 팬덤의 새로운 거점이기도 하고, 뮤직뱅크도 2012년과 2018년에 두 번이나 칠레를 찾은 바 있었다. 칠레의 행동주의적인 K팝 팬덤은 2021년 대선에서 좌파 정당인 사회융합당의 가브리엘 보리치를 지원한 바가 있고, 보리치 자신도 K팝을 좋아한다고 밝히며 팬덤의 지지를 호소할 정도였다.

하지만 2022년의 ‘뮤직뱅크 인 칠레’는 기대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면서 많은 우려를 남겼다. 공연이 시작되고 엄청난 폭우에 우박까지 갑작스레 쏟아지면서 공연 진행이 아예 불가능해졌고, 아티스트가 무대에서 넘어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공연은 그렇게 우천 문제로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날씨는 인간의 완전한 예측과 통제 영역 바깥에 있는 것이기에 단순히 날씨만 문제였다면 행사가 이렇게까지 큰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국내의 각종 아이돌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칠레의 관객들이 한국에서 온 K팝 팬들에게 몹시 배타적이고 공격적으로 나왔다는 증언과 관련 영상이 쏟아졌다. 한국 팬들을 향해 “김치”라고 부르며 야유하기도 했다는 증언은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확산된 내용이었다. 왜 이들은 애꿎은 한국인들에게 이런 반감을 표출한 것일까?

칠레를 포함하여 미국 등 미주 지역의 K팝 팬덤이 한국의 팬덤과는 다른 문화와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소수가 한국어를 배울지라도 그들이 소통하면서 활동하는 근거지는 명백히 자신들의 문화권이지 한국이 아니다. 때로는 국경을 초월해 대중음악을 통한 일체감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황에서는 문화 차이에 따른 갈등이 더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미주 지역 팬덤은 한국 팬들이 큰 카메라를 가지고 아티스트의 사진을 찍는 일에 극히 비판적이다. 특유의 사진 문화가 K팝 비즈니스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수준으로 진화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이 중심이 된 K팝 생태계에서 지리적 이유로 주변부일 수밖에 없는 그들이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는 길이라는 게 문제였다. 이번에도 가장 많은 갈등이 카메라를 둘러싸고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미주 지역 콘서트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갈등은 사실 칠레에서 처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은 앞으로도 펼쳐질 수많은 공연에서 마찬가지 마찰이 계속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K팝이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역설적으로 팬덤 문화는 수많은 지역적 갈래로 분화하고 있다. 그리고 분화한 ‘로컬 문화들’이 K팝의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만나면서 대립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과연 ‘K팝 제국’이 자신의 내부적 긴장을 성공적으로 관리해낼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11/24/MBA76NYJ2BBKPBQUU557ONZY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