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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현실에 맞춰 생각 바꾸는 게 민주적 리더십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입력 2022.11.18 03:00

그림=이철원

윤석열 정부 출범 후 6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국제 정세와 국내 정세 모두 호흡이 가빠지고 험악해졌다. 정치·경제·외교·안보 경험이 없는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는 버거운 숙제다. 그러나 대통령은 증명하는 자리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6개월쯤 지났으면 이젠 어떤 핑계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대로 쭉 가도 좋은지, 아니면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하는지 평가할 시점이다.

11월 11일 갤럽이 발표한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30%, 부정 평가는 62%다. 민심은 국정 기조를 바꾸라는 쪽이다. 긍정 평가보다 부정 평가가 두 배 이상인 상황은 좋지 않은 예후다. 이쯤 되면 ‘플랜B’를 꺼낼 시간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그대로 쭉 갈 것 같다. 애당초 ‘플랜B’가 없는 듯하다.

취임 6개월 무렵 직무 긍정 평가 30%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30%, 2008년 이명박 대통령 24%와 비슷한 수준이다. 다른 대통령은 모두 50%를 넘었다. 세 대통령의 지지율이 유난히 낮은 이유가 있다. 세 대통령 모두 야당의 ‘심리적 불복’에 시달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으로 내몰렸고, 윤석열 대통령도 탄핵과 퇴진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거대 야당의 공격에 직면해 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선거 연합’을 해체한 탓도 크다. 자신이 앉은 의자 다리를 스스로 자른 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 송금 특검’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호남과 결별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치른 총선 공천 과정에서 박근혜의 “국민도 속고 저도 속았습니다” 하는 말 한마디에 위기를 맞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준석 대표를 내침으로써 고립을 자초했다.

극단적 진영 대립 탓이든 심리적 불복 탓이든 ‘절대 비토(veto)층’ 45%가 있는 한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내내 55%를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6·1 지방선거 직후 52~53%로 거의 근접했으나 그 후 당내 갈등, 인사 문제, 대통령의 말과 태도에 대한 실망으로 스윙보터인 중도층 20%가 이탈한 상황이다.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이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40% 회복은 어렵다.

‘40% 콘크리트 지지층’ 운운했던 문재인 정권의 우를 답습하면 안 된다. 문재인 정권은 ‘40% 콘크리트 지지층’을 결집하는 동안 ‘50% 콘크리트 비토층’을 만들었다.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긴 전략적 패착이다. 윤석열 정부도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주는 콘크리트 지지층 30%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절대 비토(veto)층’ 60%가 훨씬 중요하다. 특히 중도층에서 ‘절대 비토’ 65%가 굳어지고 있다. 위험한 신호다.

정치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생각대로 현실을 바꿀 힘이 있거나, 아니면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꿔야 한다. 독재가 불가능한 시대니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은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이 ‘개혁’과 ‘보수’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다양성이 당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때부터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고 한목소리로 충성을 보이라고 몰아붙였다.

다른 목소리를 막는 순간 정당은 죽는다. 국민의힘은 새누리당보다 훨씬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당이 되었다.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은 하지 않고 ‘만장일치’ ‘박수 추인’ 같은 충성 경쟁만 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지지율이 35%를 밑돌더라도 ‘야당이 대안이냐’는 질문에 동의하는 여론 역시 35% 밑이라면 총선 결과는 민주당이 낙관할 수 없다. 2019년 조국 사태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지만 황교안이 이끄는 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할 수 있었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민주당도 2024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전철을 밟을 수 있다.

2024년 총선은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 정치 이슈가 국내 이슈를 압도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트러스 총리가 47일 만에 실각한 것도 감세안에 대한 국제적 비토 때문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에게 독일과 중국의 협력을 얘기하고 온 직후 독일 정부는 독일 반도체 회사의 중국 매각을 최종 불허했다. 인플레이션 억제와 미·중 패권 전쟁이 ‘공급망 재구축’을 위한 기술 동맹으로 진화하면서 어느 나라도 독자적으로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음을 보여준 상징적 순간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민주당보다 확실히 미국 쪽으로 중심을 이동한 국민의힘이 국민의 동의를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총선 결과를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40% 회복은 윤 대통령이 전당대회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당대회는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로 귀착된 강성 지지층 결집의 ‘플랜A’를 버리고, 이탈한 중도층을 돌아오게 할 ‘플랜B’로 전환할 좋은 기회다. 중도 스윙보터의 요구는 단순하다. ‘문재인 정부와 같은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다른 윤석열 정부’가 돼 달라는 것이다. 정책만 문재인 정부와 반대로 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태도도 반대로 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은 정책만 반대로 하고 정치적 태도는 같거나 더 나쁘다는 것이 중도층의 인식이다.

지지율이 낮은 윤석열 대통령의 전당대회 선택지는 의외로 많지 않다. 유승민과는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게 분명한 상태에서 현실적 선택지는 안철수나 나경원 둘 중 하나다. 다른 카드는 승산 낮은 도박이다. 자칫하면 조기에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 과연 윤석열 대통령이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꿀 것인가가 관건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2/11/18/SPTSHPQD3FGLJKHJG4WU4HQ6Y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