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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돈줄 막힌 저신용·저소득층 ‘최후의 보루’ 전당포행 늘어

신지인 기자, 박진성 기자
입력 2023.01.19 03:00

일러스트=이철원

수도권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50대 남성 A씨는 작년 말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전당포를 찾았다. 직원들의 밀린 월급을 주기 위해서였다. “나갈 돈은 많은데 돈을 구하는 게 너무 어려워 이곳에 왔다”며 A씨는 아내의 다이아몬드 반지, 금팔찌까지 모두 맡기고 1000만원가량을 빌려 갔다. 이 전당포 주인은 “한동안 전당포도 어려웠는데, 최근엔 1년 전보다 상담 문의가 2배쯤 늘어난 것 같다”며 “정말 급전이 필요한 사람은 신용카드로 다른 곳에서 명품을 사서 이곳에서 현금으로 바꾸는 ‘카드깡’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금리 속에서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등에서도 돈을 빌리기 어려운 저소득‧저신용자들이 각종 사연 있는 물건들을 들고 ‘최후의 보루’인 전당포를 찾아오고 있다. 신용도가 낮아 저축은행 등에선 대출을 받을 수 없거나, 이미 은행 대출이 턱까지 차오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도심에서 전당포는 찾아보기도 어렵다. 작년까지 장기간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폐업한 곳이 많다. 그런데도 전당포를 찾아와 급전을 구하는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

전당포 역시 법적으로는 대부업체로 분류된다. 보통 담보 물건 가격의 80~90%를 대출해준다고 한다. 이자는 법정 금리에 맞춰 최고 연 20%다. 보통 한 달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3주 만에 물건을 찾으러 오면 원금과 3주 치 이자를 받는 방식이다. 만약 계약 기간이 넘어도 물건을 찾으러 오지 않으면 맡긴 물건을 처분한다고 한다.

지난 12일 찾은 강남의 한 전당포에는 손님들이 맡기고 찾아가지 못한 명품들이 진열장 안에 가득했다. 가로 1m, 세로 2m의 6단짜리 진열장들 앞에는 “태그호이어 시계 165만원” “디올 레이디백 270만원” “루이비통 스퀘어 벨트 23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진열장에는 물품이 가득 차 바깥에 쌓아둘 정도였다. 오후 3시가 되자 한 남성이 이동식 카트를 끌고 들어와 상담 창구에 앉았다. 카트에서 노트북, 시계, 태블릿PC, 닌텐도 스위치, 헬스장 회원권을 꺼내며 “생활비가 급한데, 대출 되나요?”라고 말했다. 그가 모든 물건을 맡기고 대출받은 금액은 128만원이었다.

전당포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당장 생활비가 아쉬운 사람들이다. 지난 9일 찾은 종로구의 한 전당포에서는 한 손님이 “어머니 유품인데, 꼭 다시 찾으러 오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작년 7월쯤 맡긴 금목걸이를 보관 중이었다. 전당포 주인은 “동네 전당포가 사라지다보니 경기도 지역이나 인천, 심지어 충청도에서 올라온 손님도 있었다”고 했다.

전당포를 찾은 또 다른 손님 윤모(33)씨는 직장 때문에 부산에서 상경해 이번 달 4일 전세 4억원을 주고 오피스텔을 구했다고 했다. 가능한 대출과 저축을 모두 모아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이사 비용이 부족해 전당포에 왔다고 한다. 노트북 컴퓨터를 맡기고 그는 120만원을 빌려갔다. 윤씨는 “신용점수가 낮게 나와 추가 대출이 어려웠다”며 “다른 빚을 내는 것보다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전당포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건 금리가 치솟아 이자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불황까지 본격화하자, 중산층 가운데에서도 갑자기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주요 카드사 7곳의 리볼빙 잔액이 7조2621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새 1조1797억원(약 19%) 증가한 것이다. 리볼빙은 신용카드 대금을 해당 결제월에는 일부만 내고 다음 달로 넘기는 일종의 대출 서비스로 평균 금리가 16% 안팎에 이른다. 당장 자금이 쪼들려 고금리를 감수하겠다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다.

빚을 갚지 못해 경매로 집이 넘어간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사람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부동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임의경매라 한다. 올해 들어 하반기로 갈수록 이런 사례가 늘고 있다. 법원에 따르면 4분기(10~12월) 임의경매에 부쳐진 부동산은 전국 1만8580건으로 작년 동기 대비 약 17% 늘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급전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궁지에 몰려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발견하고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원글: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3/01/19/FB4MH7O6OJFL7GFMRAF5VD2K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