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 연세대 교수·‘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저자
입력 2023.03.10 00:00 업데이트 2023.03.10 00:52
농촌, 편의시설 없어 불편하기 때문에 외면받아
서점·빵집·카페 등 갖추면 청년들 몰려들 것
소멸 위험 지역이지만 관광·문화자원 많은 강진
제대로 된 중심 상권 생기면 마을 활력소 될 것
고창 상하농원, 홍성 홍동마을 등 사례 참조할 만
정부와 정치권이 지역 소멸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은 맞지만 과도한 의욕은 금물이다. 지역 소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선진국 사회가 고민하는 문제다. 아직 어떤 선진국도 고령화, 저출산, 탈산업화, 양극화 등 현대 사회의 난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발생한 지역 소멸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현재 한국 지역에 필요한 덕목은 성찰이다. 관광단지 조성,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지역 발전 사업에 아까운 재정을 낭비하기 전에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과연 소멸 위험 지역은 어떤 도시를 만들고 싶은가?
도시? 그렇다, 소멸 위험 농촌 지역도 도시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 농촌에 물리적 자본을 투입하기 전에 그 자본으로 기업과 일자리를 창출할 인재가 원하는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농촌 지역의 도시는 분명 대도시와는 다르다. 아무도 농촌에서 지하철, 연구 중심 대학, 글로벌 대기업 등 대도시에서 제공되는 도시 어메니티(생활 편의 시설)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적 삶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기본 상업 시설은 대도시와 다르지 않다.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창조 인재는 동네 마켓, 서점, 커피, 베이커리 등 일상을 즐겁게 하는 도시 어메니티가 풍부한 지역에 모인다. 농촌도 이와 같은 시설을 제공해야 청년과 귀농·귀촌인을 유치할 수 있다. 그들이 농촌 지역에서 기회를 찾고 싶다고 해서 도시 일상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구 밀도와 도시화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농촌과 도시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지역을 여행하는 MZ 세대는 전통적인 농촌 지역을 소도시라고 부른다. 소도시가 청년층이 농촌을 읽어내는 언어다.
정부도 농촌 문제를 도시적 해법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선정한 26개 도시재생 지역 중 농촌에 해당하는 읍면에서 진행되는 사업의 비중이 40%를 상회한다. 정부가 인구 2000명 수준의 농촌에서도 도시 재생을 추진하는 것이다. 문제는 도시 조성 방법이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농촌에서의 도시적 삶은 근거리에서 일, 생활, 놀이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생활권의 확보에 달렸다. 생활권 중심으로 매력적인 도시 문화를 창출하는 도시적 역량이 청년을 유치하고 농업과 연결된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농촌에서 생활권을 쉽게 확보하는 방법은 관광지, 특산물, 원도심 등 지역 자원의 활용이다. 특산물과 관광 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작은 마을에서도 도시 조성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농촌 지역은 행정 기관이 모여 있는 읍내에 지역 자원을 결집한 생활권을 만들어야 한다.
전라남도 강진군이 대표적인 사례다. 강진군은 병영성, 청량옹기, 청자마을, 가우도, 마량항, 강진다원, 월출산, 백운동원림, 강진만 등 외곽 지역에 많은 관광 자원을 보유한 소멸 위험 지역이다. 강진군청은 관광객을 읍내로 유인하고 가능하면 2박 3일 머무르게 하기 위해 읍내 동문마을에 작은 도시를 건설했다. 동문마을은 문화자원이 풍부하다. 강진향교, 강진미술관, 사의재한옥체험관, 다산청렴연수원 등 문화시설이 모여 있다. 소로와 골목길의 격자형 구조망이 쾌적한 보행 환경을 제공한다. 건축물은 한옥과 단독주택이 주를 이룬다. 동네에 빈 공간이 많은 것은 단점이다. 하나로 연결된 상업 가로가 없는 것도 부족한 부분이다.
도시적 관점에서 동문마을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앵커스토어(상권의 중심 점포)의 유치고, 또 하나는 빈 공간을 채울 로컬 크리에이터(콘텐츠 창작자)의 공급이다. 둘 중 더 중요한 사업이 있다면 앵커스토어다. 앵커스토어가 제 기능을 하면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을 유인할 수 있다. 강진군이 동문마을 앵커스토어로 기대하는 기업은 의류와 생활용품, 지역 특산품 유통에 주력하는 기업인 에피그램이다. 저잣거리, 한옥 스테이, 주막, 카페로 구성된 한옥 체험관의 운영을 에피그램에 위탁했다. 에피그램은 2022년 강진에 한옥을 숙박 및 문화 체험 시설로 리모델링한 ‘올모스트 홈스테이’도 오픈했다.
이곳이 동문마을의 앵커스토어로 안착할 수 있을까? 현재도 이미 충분한 로컬 임팩트를 창출한다고 말할 수 있다. 녹차, 귀리 강정, 매거진, 스토리텔링, 강진 여행 가이드 등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로 강진 로컬과 전통의 가치를 전달한다. 동문마을에 더 필요한 것은 지역에 기반을 둔 로컬 기업이다. 단기적으로는 대기업 지원이 긴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여 자온길, 예천 생텀마을, 남해 팜프라, 진천 뤁스퀘어, 영월 그래도팜같이 농촌 마을 자원을 도시 콘텐츠로 전환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기업이 마을 경제를 견인해야 한다.
농촌 지역의 도시화는 이처럼 상업 시설의 도시화를 의미한다. 농촌 도시화 전략은 일차적으로 관광객과 청년을 모을 수 있는 상업 시설로 크리에이터와 기업 생태계를 구축한 다음 이차적으로 생태계를 통해 농촌의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는 2단계 전략이다.
1단계 상업 시설은 유통 업종에 한정되지 않는다. 특산물 중심으로 유통, 소매, 식가공, 숙박, 문화 시설 등 다양한 6차 산업 콘텐츠를 개발하는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확장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낙농 콘텐츠의 고창 상하농원, 유기농 콘텐츠의 홍성 홍동마을, 일본에서는 올리브를 특화한 가가와현 올리브가든, 자연 방목 달걀을 앞세운 돗토리현 오에노사토자연목장, 유자를 내세운 도쿠시마현 기토마을이 좋은 로컬 콘텐츠 타운 사례다.
지역에 대한 성찰은 지역에 남아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청년의 선호와 의견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일이다. 도시에 식품을 공급하는 농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하는 말이 ‘농촌 없는 도시는 없다’다. 맥락은 다르지만 지역에 남고 싶은 청년은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한다. 도시 없는 농촌은 없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3/10/TQR32YNI45CLFK3DOC7XYGJC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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