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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동물과 발맞춰 걷기] ‘마당개’ 스무마리가 수술대에 올랐던 날

김민은 수의사·국경없는수의사회 홍보팀장
입력 2023.03.09 03:00

/일러스트=이철원

잔뜩 겁에 질려 토끼처럼 방방 뛰던 녀석들… 고환·자궁 떼내고 귀가
작지도 예쁘지도 않아 외면받는 믹스견의 유기·안락사 막을 고육책

얼마 전 제주도에서 의미 있는 소식이 들려왔다. 몇 해째 꾸준히 진행해오던 ‘마당개’ 중성화 사업이 성과를 거두면서 2019년 8000마리에 이르던 유기견 수가 작년 5000마리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보호자에게 버려져 정처 없이 떠돌다 가축을 해치고 사람까지 위협하는 유기견 문제는 동물을 가족처럼 인식하는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마당개란 흔히 마당에 풀어놓고 기르는 이른바 ‘똥개’를 말한다. 마당개 중성화는 수술을 통해 개의 성징을 제거하는 일이다. 제주도 사례는 중성화가 유기견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의사와 수의대생이 함께할 수 있는 자원봉사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동물판 ‘무의촌 의료 봉사’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도 지난 가을 경기도 안성에서 중성화 의료 봉사에 참여했다. 진행 요원 역할을 하는 수의사 4명, 실제 수술에 참여하는 수의사 16명, 수의대생 22명, 자원봉사자 10명 및 임상 병리 검사 물품의 후원사 직원 2명이 참여했으며, 마당개 20마리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현장은 정신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접수를 받고 보호자에게 유의 사항을 알리며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는데, 마당개들은 이름조차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마당개들이 토끼처럼 뛴다고 해서 토끼 1번, 토끼 2번, 토끼 3번처럼 ‘번호’로 불리며 접수했다. 여러 ‘토끼’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에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토끼’들은 덩치도 커서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았지만, 봉사에 참여한 수의대생들이 ‘토끼’들을 간신히 껴안고 다독여야 했다.

수술대에 올랐던 마당개는 암컷 12마리, 수컷 8마리였다. 마취를 한 뒤 암컷은 난소와 자궁을 적출하고, 수컷은 고환을 떼냈다. 적출은 보통 30분 이내로 짧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마취로부터 회복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시에서 건물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당일 아침에 차려진 수술방은 사설 보호소 같은 다른 봉사 장소에 비하면 환경이 아주 쾌적했다. 그럼에도 임상 병리 검사 테이블과 여러 개의 수술대를 배치하고 나면 장소가 협소했다. 수의사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며 마취를 마친 마당개나 차트를 들고 다급하게 오고 가는 풍경은 전시 야전병원처럼 긴박했다.

중성화 수술을 마친 마당개들은 회복실에서 누운 채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마취 팀이 수시로 오고 가면서 체온을 확인하고 저체온증을 예방하기 위해 담요를 덮어준다. 처음에는 미리 준비된 물품을 찾는 것도 쉽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속도가 붙고, 마취에서 깨어난 마당개들은 넥 칼라를 두른 모습으로 하나둘 현장을 떠났다.

이렇게 수술대에 오르는 마당개들의 중요한 특징은 이른바 품종견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른바 ‘믹스견’ 즉 잡종개들이 대다수다. 이런 마당개가 무분별하게 번식할 경우 새로 태어난 마당개들은 들개가 되어 포획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유기견이 되어 보호소에 갈 확률이 매우 높다. 개가 클수록, 그리고 품종을 알 수 없는 믹스견일수록 새 가정을 찾는 일은 요원하다.

믹스견은 ‘예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크기로 자랄지 예측할 수도 없다. 주로 아파트에서 소형견을 키우려고 하는 현대인들은 마당개를 입양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은 품종견은 새로운 가정을 찾아가고 보호소에는 믹스견이 주로 남게 된다. 사설 보호소에서 봉사에 참여하다 보면 대부분 유기견이 마당개 출신의 믹스견임을 알 수 있다.

‘마당개 중성화 의료 봉사’에 대해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개인이 키우는 반려동물을 무료로 중성화해주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 그러나 이 의료 봉사의 목적은 마당개로 대표되는 믹스견들의 무분별한 번식을 막아 추가적인 유기견 보호소 입소를 예방하는 것이다. 이들은 보호소에서도 새로운 가정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여 장기 보호되거나 안락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의대생 중에는 어린 시절 TV 동물 프로그램 등에 나오는 동물의 모습이 좋아서 이 길을 택한 사람이 많다. 필자도 그중 한 명이다. 하지만 막상 수의사가 되고 보니 동물 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아 좌절하거나 고민하게 되고, 바쁜 일상에 매몰되면서 초심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동물들의 눈망울은 초심을 일깨워준다. 다음에 진행될 마당개 중성화 의료 봉사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3/09/JI4CUO3RQJGIDJTGANAOWHSRL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