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3.03.16. 03:00
‘엑소더스’는 구약성경에만 나오는 사건이 아니다. 한일합방에서 전쟁, 분단, 산업화, 도시화로 이어진 20세기 한국사야말로 민족 대이동의 역사였다. 일제강점 말기에 망명·징용·징병으로 나라 떠난 사람들이 당시 인구의 30%, 해방 직후 한 달 반 사이에만 북에서 남으로 이주한 월남민이 10%에 달했다는 통계가 있다.
강제로 내쫓기던 시기에 한국 문학의 주요 주제는 ‘고향’이었다. 향수, 방랑, 망향, 귀향 등을 주제 삼은 고향 시편이 서정시를 지배했고, 어머니, 누이, 시골집 같은 연관어도 단골로 등장했다. 실향의 운명이 그런 노래를 만들어냈다. ‘고향을 노래하면 반드시 서러워지는 심정은 (…) 조선 시에서만은 진리’라고 임화는 쓰고 있지만, 뿌리뽑힘의 서러움이 한반도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두 차례 대전을 포함해 여러 전쟁과 격변을 겪은 20세기 세계사 전체의 현실이었고, 혁명과 내전까지 치러야 했던 러시아는 특히 충격의 여파가 컸다. 그 상처를 노래해 인기 끈 시인이 랴잔 출신 예세닌이다.
‘농촌 최후의 시인’을 자처한 예세닌은 나라 잃은 한국 근대 시인들에게도 사랑받았다. 오장환은 도쿄 유학 시절 술에 취해 예세닌을 읊으며 울었다 한다. ‘그렇다. 두 번 다시 누가 돌아가느냐/ 아름다운 고향의 산과 들이여!….’ 정지용의 저 유명한 시구(‘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도 얼핏 예세닌의 메아리처럼 들린다. ‘내 태어난 곳에 왔다./ … / 아, 사랑하는 고향 땅이여!/ 너는 예전의 네가 아니로구나.’ 누가 누구를 따라 썼다는 게 아니라, 고향 상실의 보편적 시대색을 말하는 것이다.
잘 아는 노래 ‘고향의 봄’ 가사가 이렇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정확히 말해 그리운 건 고향이 아니다.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이 그리운 거다. 고향은 원초적 기억과 원초적 사랑으로 이루어진 어린 시절의 요람, 어머니 품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은 지나가기 마련이니, 실낙원은 고향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경주 근교 모량리에 갔다가 함경북도 부령에서 월남한 분의 개인 집을 발견했다. 독문학자 김연순 교수의 말년 거처다. 한반도 남북과 독일을 떠돌며 평생 ‘내 집병’에 시달렸던 고집 센 경계인의 인생 스토리는 ‘내겐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한 권 책으로 남아 있다. 세 아이를 둔 채 홀로 독일 유학 떠날 만큼 모진 삶을 산 이 여인은 끝내 고향 닮은 시골 마을에 마지막 둥지를 틀고 자신의 ‘치유될 수 없는 노스탤지어’를 달래야 했다.
이제는 주인의 손길을 잃어 쓸쓸해진 곳이다. 그러나 복낙원의 자취만큼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손수 벽돌 쌓아가며 고향 집을 재현해놓은 처소에 이름까지 ‘과목장’이라고 따라 붙였다. 부령의 과목장은 갖가지 나무와 호수와 동물들이 모여 사는 풍요의 낙원이었다는데, 모량리 과목장은 부뚜막을 안에 들여 정주간(부엌방)을 만들고, 방바닥은 단차를 두어 조금 들어 올린 함경도식 가옥의 축소판이다. 부엌 온기로 난방을 대신하고 신발을 방안까지 신고 들어오는 추운 지방 특유의 구조로, 러시아 농가의 페치카와 원리가 비슷하다. 요즘 식 거실에 해당하는 이 따뜻한 공간을 중심으로 어린 시절의 정겨운 가족사가 펼쳐졌을 것이다.
‘고향’이라는 말이 점차 잊혀간다. 고향을 주제로 한 동요가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90년대 이후 대중가요에서도 고향이 자취를 감췄다. 덩달아 ‘향수’라는 말도 듣기 어려워졌다. 모두가 떠도는 인생이다. 서울 토박이(3대째 서울 거주)는 5%에도 못 미치며, 호적제 폐지 이후부터는 아예 토박이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디아스포라와 디지털 노마드가 실존 방식으로 떠오른 21세기에 ‘뿌리’의 강조는 시대착오적 냄새마저 풍긴다.
하지만 기억의 시선은 여전히 머무를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곳이 고향이다. 실향민의 기억에 기초해 ‘북한의 옛집’을 쓴 건축사학자가 말하기를, 월남민에게 설문지를 돌려 반세기 전 떠나온 집 도면을 그려달라 했더니 답신이 쇄도했고, 실사 스케치는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었으며, 답변지 대부분이 눈물에 젖은 듯 부풀어 있었다 한다. ‘꽃 피는 산골’이 아닐지라도, 강제로 빼앗겼건 자발적으로 떠나왔건, 고향 구석구석은 슬프고 행복한 이야기투성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도 울게 만든다. 불현듯 내 어린 시절의 고향, 저기 저 작은 아파트, 온갖 ‘보물’ 깊숙이 감춰놓고 기어들던 침대 밑 어둠 속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3/16/BPNSQCYELJEYXH7OFILYTC5H44/
'일러스트=이철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건형의 닥터 사이언스] 우주 대항해 시대를 여는 질문 “달은 지금 몇 시죠?” (0) | 2023.03.21 |
---|---|
[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윤석열 대통령이 마주한 두 전쟁 (2) | 2023.03.17 |
[7NEWS] ‘챗GPT’ 열풍에 대만 TSMC 매출 증가...삼성전자는 적자 심화 예상 (4) | 2023.03.16 |
우물 안 프로야구, 개구리 몸값만 뛰었다 (0) | 2023.03.14 |
[호남 통신]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호남 정치인들 (0) | 2023.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