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논설위원
입력 2023.05.24. 20:47 업데이트 2023.05.25. 01:39
인류 역사에 비만이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늘 먹을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중국 시안에 있는 양귀비 동상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풍만한 것이 미의 기준인 시대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얼마 전까지도 아이가 토실토실하면 “복스럽다” “장군감이다”고 칭찬했다. 1983년까지 몸무게 등이 주요 기준인 우량아 선발대회가 열려 큰 인기를 끌었다.
▶비만 치료제가 처음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것이 1959년이었다. 나비약으로 잘 알려진 펜타민은 뇌 식욕조절 중추에 작용해 식욕을 덜 느끼거나 포만감을 증가시키는 약물이었다. 그러나 의존성 위험에다 부작용도 커서 단기(4주 이내) 처방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엔 장에서 지방 분해를 차단하는 지방흡수 억제제가 등장했다. 그러나 효과가 크지 않았고 대변실금 등 부작용이 있었다. 2008년 나온 백영옥 소설 ‘스타일’에서 주인공 31세 여성은 하필 애인을 만났을 때 이 약 부작용이 나타나 낭패를 겪는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당뇨약 임상시험 중 시험 대상자 체중이 감소하는 ‘부작용’을 발견했다. ‘GLP-1 유사체’가 체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할 뿐 아니라 포만감을 주어 식욕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회사는 곧바로 임상시험에 들어가 2014년 주사 방식의 비만 치료제 ‘삭센다’를 FDA로부터 허가받는 데 성공했다. 현재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1위 제품이다. 투여 주기를 늘린 ‘위고비’도 개발했는데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등이 사용하며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 성공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이 ‘초거대 시장’에 뛰어들었다. 일라이릴리도 비만 치료제 최종 임상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22일 먹는 비만약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했다. 효능은 현재 나온 비만약과 비슷한데 기존 방식과 달리 먹는 약 형태라 훨씬 편리하다는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인류가 약으로 비만을 다스리는 시대가 임박한 것일까. 인류는 원시 시대부터 기아에 적응하느라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꺼내 사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비만 치료제는 수많은 인체 작용 중 한두 가지 정도에 영향을 주는 수준이다. 비만 치료제의 부작용도 줄었다고 해도 아직 만만치 않다. 의료계는 아직 약물만으로 인간이 적정 체중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역시 적절한 음식 섭취와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양귀비![]() |
펜타민![]() |
백영옥![]() |
소설 스타일![]() |
삭센다![]() |
위고비![]() |
일론 머스크![]() |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3/05/24/B5INZFWMIJE2ZFCDYOOVWDR2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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