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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만물상] 한국인 없는 K팝 그룹 탄생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3.06.15. 00:10

일러스트=이철원

1990년대를 풍미했던 보이 그룹 H.O.T.는 결성 당시 해외 진출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잘생긴 외모, 세련된 노래, 현란한 춤을 TV로 본 중국과 동남아 청년들이 열광했고, 이에 고무된 SM 등 기획사들이 해외 진출을 목표로 K팝 아이돌 그룹 만들기를 시작했다. 노래와 춤 못지않게 언어 장벽을 넘는 게 숙제였다. 재미교포 유진과 재일교포 를 발굴해 내놓은 첫 작품이 걸그룹 S.E.S.였다. 슈를 앞세워 일본에 진출했고 대만에선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이 됐다. K팝 열풍의 시작이었다.

원더걸스동방신기 등 토종 한국인 아이돌이 해외 진출에 나섰던 이 시기를 ‘K팝 1.0′이라 한다. 이후 최근까지는 다국적 그룹이 대세인 ‘K팝 2.0′ 이다.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9명 중 쯔위는 대만인, 모모와 사나는 일본인이다. 많은 일본 소녀가 모모와 사나처럼 K팝 걸그룹이 되어 도쿄돔 무대에 서는 날을 꿈꾸며 한국에 온다. 블랙핑크의 메인 댄서인 태국인 리사는 그 나라 청년들 사이에서 가장 닮고 싶은 롤모델이다. 태국 총리도 “국위를 선양한 젊은이”라고 공개 칭찬했을 정도다. K팝의 지평을 넓힌 사례들이다.

▶마침내 한국인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K팝 그룹이 등장하는 ‘K팝 3.0′ 시대가 열렸다. 지난달 신곡 카르마를 선보인 걸그룹 블랙스완이 그 주인공이다. 국적과 인종 조합은 더욱 파격적이다. 파투는 세네갈 출신의 벨기에 국적 흑인이고 가비는 독일 출신의 브라질 국적 백인이다. 스리야는 인도인, 앤비는 미국인이다. 이들의 출신국은 K팝이 시장 확장을 노리고 있는 지역들이기도 하다.

▶K팝의 현지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일본에서 얼마 전 결성된 니쥬(NiziU)는 멤버 전원이 일본인이고 노래도 일본어로 한다는 점에서 K팝의 토착화 사례로 꼽힌다. JYP 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가 지난해 뉴욕과 LA 등 대도시를 돌며 A2K(아메리카 투 코리아)라는 글로벌 오디션을 연 것도 영어권에서 활동할 현지인 K팝 걸그룹 재원을 찾기 위해서였다.

▶‘한국인이 부르거나 한국어로 불러야 K팝’이란 정의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 누가, 무슨 언어로 부르건 ‘화려한 칼군무에 맞춰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게 노래하고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게 K팝’이란 것이다. 그 사이 K팝의 역사를 다시 쓴 BTS는 10주년을 맞았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전 세계 아미(BTS 팬덤)가 한국을 찾고 있다. K팝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응원하며 지켜보게 된다.

 

H.O.T.
S.E.S.
원더걸스
동방신기
트와이스
블랙핑크
블랙스완
니쥬
BTS
 
유진
쯔위
모모
사나
리사
파투
가비
스리야
앤비

국내 최초 ‘한국인 없는 K팝 걸그룹’ 블랙스완. 왼쪽부터 멤버 가비(리드댄서·서브보컬), 스리야(메인댄서·리드보컬), 앤비(메인보컬), 파투(리더·메인래퍼). /이태경 기자

원글: https://www.chosun.com/opinion/manmulsang/2023/06/15/OC5NUWE7QNGFHFTTFNS7GCTRF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