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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별곡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5] 공산당에 아부하는 中 지식인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18.08.17. 03:12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백화제방(百花齊放)하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부터 2300년 전의 중국에서다. 그러나 춘추전국(BC 770~BC 221) 때 화려하게 피어올랐던 중국의 지식 전통은 금세 시들어 버린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있었고 오로지 유가 사상만을 으뜸으로 치는 한무제(漢武帝)의 독존유술(獨尊儒術)이 있었다. 나와 다른 남을 모두 배제한다는 맥락에서 이는 '사상의 금고(禁錮)'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중국의 지식 전통은 그 뒤로 지금까지 아주 오랜 침체기를 거친다. 춘추전국 시대에 자유를 누렸던 중국의 선비[]들은 이후 군주에게 전략을 만들어 바치는 책사(策士)로 내려앉는다. 그마저도 잇지 못해 작은 꾀를 바치는 모사(謀士)로 다시 곧 전락하고 말았다.

글자 잘못 써 황제의 노여움을 사 목숨을 잃는 문자옥(文字獄)이 기다리거나, 심지어는 본인 외에 수많은 친족이 죽임을 당하는 연좌(連坐)의 어두운 그늘 속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한나라 이후 2000년 넘는 중국의 왕조사에서 중국 지식인이 키운 것은 그저 노예근성이라는 지적이 있다.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이 들어선 뒤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57년의 비()공산주의 계통 지식인을 대거 숙청한 '반우(反右) 운동'이 벌어졌고 1960년대의 문화대혁명 때는 숱한 지식인이 다시 참혹한 시련에 직면해야 했다.

이른바 '수퍼 차이나' 열풍을 일으킨 후안강(胡鞍鋼)이라는 교수의 몰락이 얼마 전 화제였다. 이미 중국의 국력이 많은 영역에서 미국을 앞질렀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옛 황제의 권력을 대신한 오늘날의 중국 공산당 입맛에 딱 들어맞는 노예근성의 아부였다.

중국에 ‘가대공(假大空)’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거짓[], 허풍[], 헛소리[]를 합친 말이다. 좋은 지식 전통을 키우지 못하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딱 그 정도에 불과한 후안강이 한국에 올 때마다 세계적 지식인으로 대우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우리의 지식 수준도 이 기회에 함께 살펴볼 일이다.

후안강

원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16/2018081604257.html